곳간 열쇠는 원래 낯선 사람한테 맡기지 않는 법이다. 기업들이 인재 채용 방식을 다양화하면서도 자금 운용을 총괄하는 최고재무책임자(CFO)만큼은 내부에서 발탁하거나 비공개로 영입해온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최근 기업들이 CFO를 ‘공개 채용’으로 뽑는 실험에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강원랜드와 KT에 이어 대표적인 오너 기업인 동원그룹도 CFO 공모에 들어갔다. CFO의 중요성과 위상이 그만큼 높아지고 기업경영이 투명해지는 흐름을 반영한다는 평가다.

◆‘곳간지기’를 공모로 뽑는다

동원그룹은 김재철 회장의 지시로 해외 핵심 계열사인 미국 스타키스트, 세네갈 SNCDS 등에서 일할 CFO를 공개 모집하고 있다. 20일 공개채용 공고를 낸 이후 식품 유통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들의 문의전화가 이날 10여통 넘게 걸려왔다. 유통업계 출신이라고 밝힌 한 중년 남성은 “연령 제한이 없다면 CFO에 지원해 경험을 살려보고 싶다”며 전형 절차를 자세히 물었다.

미래 성장동력을 해외에서 찾고 있는 김 회장은 헤드헌팅 등을 통해서도 마땅한 적임자를 찾지 못하자 과감히 외부 채용을 결정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송재권 동원그룹 경영지원실장은 “향후 유럽, 남미 등에 추가 진출할 때도 역량 있는 CFO를 공모를 통해 선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동원그룹의 경우 해외 자회사에 한해 CFO를 공모하고 있지만 KT는 올초 본사 CFO를 외부에서 수혈하는 시도를 했다. 이석채 KT 회장은 지난 1월 CFO인 가치경영실장이 공석이 되자 “KT 내외부를 막론하고 적임자를 찾으라”고 인사팀에 지시했다. 최종 면접에서 외부인사 2명과 내부인사 2명이 후보로 올랐다. KT 관계자는 “최종 합격자로 KTF 시절부터 IR 업무를 맡아온 김범준 전무가 발탁돼 대부분의 직원은 내부 승진한 것으로만 알고 있지만 사실은 외부 인사와 치열한 경쟁을 거쳐 선발된 것”이라고 밝혔다.

강원랜드는 이미 4년 전부터 임기 2년인 CFO를 공모로 뽑고 있다. 2008년 김상대 전 신한은행 부행장이 첫 공채 CFO에 올랐고, 2010년에는 JP모건체이스은행 한국본부장 출신의 백윤범 상무가 발탁됐다. 강원랜드 관계자는 “CFO 경쟁률이 첫 공모 때 3 대 1에서 재작년에는 5 대 1로 높아졌다”며 “올해 말 실시될 세 번째 공모에선 더 많은 전문가가 몰릴 것”이라고 말했다.

◆‘사장급 CFO’ 증가 추세

CFO는 회사의 자금 운용을 총괄하는 관리자로 최고경영자(CEO), 최고운영책임자(COO)와 함께 기업의 3대 경영인으로 분류된다. 임우돈 한국CFO협회 사무총장은 “유례없는 경기 불황을 거치면서 기업 핵심역량에 집중해 현금을 확보하고 사업구조를 재편하는 것이 CFO의 핵심 역할로 떠올랐다”며 “예전에 비해 CFO 개개인의 ‘내공’이 중요해진 만큼 기업 입장에서 꼭 내부에서만 발탁해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회사 사정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CFO는 대부분 상무, 전무, 부사장급이 맡고 있다. 최근에는 CFO가 사장급으로 격상되는 사례가 늘면서 CEO와 CFO를 조합한 ‘CEFO’라는 신조어도 업계에서 회자되고 있다. CFO가 단순한 재무 관리에서 벗어나 인수·합병(M&A)과 대규모 투자 등 CEO의 전략적 의사결정을 보조하는 역할로 위상이 높아지는 현상을 대변하는 말이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재무책임자가 비자금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오너의 최측근’ 위주로 기용되기도 했다”며 “이 자리가 외부에 개방됐다는 것은 기업 경영이 그만큼 투명화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임현우/양준영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