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시장에서 한국 기업에 대한 견제와 압박의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차가 너무 잘 팔린다’는 이유로 유럽연합(EU)의 수출 우선감시 대상 지정 위기에 놓였다. 정보기술(IT) 공룡 애플은 삼성전자에 25억달러의 특허소송을 내며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 철강업체들은 브라질과 캐나다에서 덤핑조사를 받는 등 각종 ‘보호무역 덫’의 표적으로 몰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 법무부 반독점국이 또다시 한국 기업들을 정조준했다. 반도체 D램(2005~2007년)과 LCD(2008년)에 이어 한국의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2차전지의 가격담합 혐의를 붙잡고 강도 높은 조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시장 점유율 2, 4위인 파나소닉과 소니 등 일본 업체들도 조사 대상에 포함됐지만 1, 3위인 삼성SDI와 LG화학 등 한국 업체들이 주된 타깃으로 알려졌다.

◆美회사 쓰러지자 한·일 업체 견제

미 법무부가 노트북PC와 휴대폰 등에 쓰이는 소형 2차전지에 대한 가격담합 조사에 들어간 것은 지난해 상반기부터다. 당시 미국 최대 2차전지 회사인 에너원(Ener1)은 연방정부의 자금지원을 받을 정도로 경영사정이 어려웠다. 기술력과 가격경쟁력에서 한국 업체에 밀려 시장점유율이 떨어진 탓이다. 에너원은 전기차에 들어가는 대형 2차전지에서도 GM 등 미국 업체로부터 외면당해 결국 올해 초 파산보호를 신청, 공적자금을 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 무렵 삼성SDI와 LG화학은 2차 전지 종주국인 일본을 제치고 글로벌 시장점유율 1위로 올라섰다. 지난 1분기 삼성SDI와 LG화학의 전체 점유율은 43.4%로 일본 3사(파나소닉 소니 맥스웰) 30.9%를 훨씬 웃돌았다. 업계에서 “미 법무부 조사가 한국 업체를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시장조사기관인 솔라앤에너지는 2차전지 시장 규모가 2011년 140억달러에서 2020년에 약 450억달러로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 중대형 배터리 시장 규모가 소형 배터리 시장보다 4배 이상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과 EU 공동조사

담합 적발 시 기업은 벌금 외에도 유무형의 손실을 보게 된다. 벌금은 부당이익의 2배와 소비자 손실액 합계액의 2배 가운데 큰 금액까지 부과할 수 있다. 최근 담합에 따른 벌금은 1억달러 이상이 대부분이다. 임직원도 100만달러 이하의 벌금과 10년 이하의 징역을 받을 수 있다.

미 법무부는 올초 일본 자동차부품 업체들이 미국에서 가격담합을 한 사실을 적발했다. 야자키와 덴소 두 회사에만 5억4800만달러의 벌금을 때렸다. 삼성SDI와 LG화학에 각각 어느 정도 벌금이 부과될지는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 하지만 1억달러를 넘을 수도 있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미국은 최근 들어 국제 카르텔조사에 대해선 EU와 공동 조사를 하고 있다. EU도 2차전지 가격 담합 혐의를 별도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로펌 관계자는 “경쟁 당국에 의한 벌금이나 과징금 제재 외에도 소비자에게 집단소송을 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정인설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