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불황에 만기가 돌아온 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 처리되는 상장기업들이 잇따르고 있다. 현재진행형인 유럽 재정위기와 불투명한 G2(미국, 중국)의 경기회복 우려 등이 국내 경기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 이 과정에서 경영진의 횡령, 배임, 내부자거래 등 '도덕적 해이(모럴헤저드)' 사례가 빠지지 않고 드러나고 있다. 상장폐지로 휴지조각이 된 주식을 손에 쥔 수많은 주주들에게 다시 한 번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 준 꼴이다.

인수·합병(M&A)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경영진의 입장에서는 향후 사업 재기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돈"이라며 "일종의 비자금을 마련해 둔 경영진은 재기할 수 있는 방법을 보다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현재 정상적으로 비상장사를 운영 중인 한 기업 대표도 "부도를 막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그런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지난 14일 증시 입성 2년 6개월 만에 한 상장기업이 퇴출됐다. 단조제품의 원재료로 쓰이는 인고트(INGOT)를 제조해 판매해오던 금강제강이 그 장본인이다.

이 회사 경영진은 만기 어음을 막지 못해 최종 부도처리 나기 전 장내에서 자신의 보유지분 절반 가량을 매도해 수 십억원을 마련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시장에선 내부자거래 의혹이 제기됐고, 당시 금융감독기관도 주의깊게 지켜볼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절반 가량의 보유지분만 판 것을 두고 여전히 기업회생에 대한 의지가 엿보인다고 지적했었다. 경영진의 입장에서는 불법인 미공개 정보를 가지고 사전매매를 해서라도 현금을 마련해 둬야 재기를 위한 발판을 만들 수 있어서다.

실제 업황 불황에다 중국의 '저가 공세'로 중소 철강사들은 올들어 극심한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금강제강을 비롯해 강관업계 4위인 미주제강, 현진스틸, 함양제강 등 올 상반기 부도 난 철강사만 4곳에 이른다. 지난 17일 스테인리스 봉형강업체인 배명금속도 어음 부도로 인해 상장폐지 절차에 들어갔다.

지난 6월 중순 이후 주권매매거래가 정지된 상태로 상장폐지 관련 심의에 들어간 엔케이바이오도 경영진의 횡령·배임이 들통난 곳이다. 엔케이바이오는 최근 반기 매출액이 불과 7억원 미만인 것으로 드러났다.

엔케이바이오는 최초 약 68억원의 경영진 횡령 혐의가 포착돼 상장폐지 실질심사 이후 상장폐지 결정이 내려진 가운데 올해 상반기 재무제표에 대한 감사의견 결과, 회계법인으로부터 '거절'을 통보받았다. 지난주에 또 추가적인 경영진의 횡령 및 배임 혐의가 발견되기도 했다.

진흥저축은행도 경영진의 횡령·배임 혐의로 상장폐지 심사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이 회사 경영진의 횡령·배임 발생금액은 397억원으로, 무려 자기자본의 18.2%에 해당하는 대규모다. 그간 경영상 어려움을 겪었던 진흥저축은행도 매매거래가 정지되기 전 유상증자 등 자금 마련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밖에 이노셀이 최근 4사업연도 연속 영업손실이 발생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이후 최대주주가 변경돼 상장폐지실질심사 대상으로 지목됐고, 어울림네트웍스는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추진하던 중 횡령·배임, 가장납입, 분식회계설(說) 의혹까지 터지면서 매매거래가 정지됐다.

한경닷컴 정현영 기자 j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