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추교정용 의료기기를 생산하는 A사는 2005년 중국에 진출했지만 아직도 별다른 매출이 없다. 중국 정부의 판매 승인을 받는 데 5년을 허비했고 승인 후에는 유통망을 뚫느라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개혁 개방 30여년이 지났지만 중국은 산업계 곳곳에 터무니없는 규제의 덫이 존재하고 있다.

중국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상품 중 하나인 아모레퍼시픽 화장품도 방문판매시장에 진입하는 데 2년이나 걸렸다. 중국에서 영업하고 있는 한국계 은행들은 지점을 1년에 한 곳밖에 늘릴 수 없다. 그나마 원하는 곳에 받으려면 수익성이 맞지 않아도 중국 정부가 원하는 서부지역에도 지점을 내야 한다.

우리은행 청두지점, 신한은행 창사지점, 기업은행 우한지점 등이 생겨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자국 은행인 공상은행의 지점 수가 2만2000여개인 점을 고려하면 지나친 규제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한국 건설업체들도 마찬가지다. 현지에서 업력을 쌓아야 주는 건설면허 때문에 능력이 있어도 대형 프로젝트에 대한 입찰 자체가 봉쇄된다.

전문가들은 그래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차이나 2.0시대를 극복하는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양국은 오는 22일부터 3일간 중국 웨이하이(威海)에서 제3차 한·중 FTA 협상을 연다. 현재 한국과 중국의 실질 관세율은 각각 6.0%와 3.9% 수준이다. 관세가 완전히 철폐되더라도 양국의 교역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

반면 중국의 경우 첨단제조업 서비스업 등에서 시장 접근이 크게 제한돼 있다. 따라서 중국에 있는 기업들이 최대한 자유롭게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초첨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래정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한·중 FTA는 상품 무역자유화뿐 아니라 비관세장벽인 중국 내수시장 공략을 위한 투자 및 서비스 규제를 푸는 데 집중해야 한다”며 “사회주의 특성을 감안해 FTA 합의안에 대해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의 확답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모임인 중국한국상회도 한·중 FTA 협상과 관련, 외자 기업에 대한 진입규제 해제, 중국 기업 보호조치 철폐 등을 주로 건의했다. 오천수 한국상회 상근부회장은 “한·중 FTA는 중국 내수시장 진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특히 서비스업 진입규제가 완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 경영의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는 만큼 이를 한·중 FTA에 반영해 양국 간 우호적 분위기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사회과학원이 지난해 펴낸 2011년 기업사회책임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내 한국 기업들의 CSR 활동 점수는 외자 기업(평균 12.5점)에 못 미치는 8.4점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중국 내 한국 기업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다. 결국 한·중 FTA의 ‘협력’ 항목에 양국 기업의 CSR 표준을 정함으로써 한국 기업의 CSR을 강화하면 내수시장 공략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