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있는 재판소만 해도 잠시 거쳐간 한국 법조인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법조인의 세계화는 미흡합니다.”

한국인 최초로 유엔산하 국제재판소 상임재판관이 된 지 11년째인 권오곤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재판관(59·사진)은 국내 법조인의 세계 진출 상황에 대해 아쉬운 게 많다고 말했다. ICTY는 1991년 이후 옛 유고슬라비아에서 발생한 대량 학살 등의 주도자를 형사재판하는 국제재판소다. 이에 반해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영토 분쟁 등 국가 간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국제재판소로, 최근 일본이 독도 문제를 ICJ에 제소하자고 나서기도 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머물다가 휴가를 맞아 일시 귀국한 권 재판관은 지난 17일 서울 서초동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의 유엔 재정 기여도를 생각하면 ICTY 직원 1000명 중 적어도 6명은 한국인이어야 하는데 지원자가 없어서인지 현재는 1명뿐”이라고 전했다.

그는 “우리나라 법조인은 실력이 뛰어나 영어로 말만 잘해도 얼마든지 세계에서 통할 수 있어 아쉬움이 더 크다”고 밝혔다. 권 재판관은 “영미법계와 대륙법계를 절충한 우리나라 법 체계는 역시 절충적인 국제재판소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며 “국제법이 국내법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감안하면 법조계의 세계화가 시급하다”고 역설했다.

최근 불거진 독도 문제에 대해 권 재판관은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님을 전제한 뒤 “일본이 독도에 대해 어떤 자료를 가지고 어떤 주장을 할지 정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실효적 지배를 하면 될 일이지 위험 부담을 안고 ICJ로 갈 필요는 없다”는 의견을 냈다.

그는 “ICJ 재판관 가운데 아시아 출신 세 자리 중 중국과 일본이 두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남은 한 자리를 놓고 아시아 국가가 경쟁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일본과 붙는 한이 있더라도 ICJ 재판관 후보자를 우리도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재판관은 20년 넘게 판사로 재직하다 ‘법관의 꽃’인 고등법원 부장판사 자리를 뒤로 하고 2001년 ICTY 행을 택했다. 유엔 총회를 거쳐 한국인이 국제재판소 재판관이 된 건 그가 최초다.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 수석을 차지했던 권 재판관은 “한국에서의 보장된 미래 대신 국제재판소를 선택하자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반대하더라”고 회상했다. 그러나 그는 “세계적인 재판에 참여하는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는 데 매력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권 재판관은 2008년 ICTY 부소장으로 선출돼 역시 한국인 최초로 국제재판소 고위직에 오르는 기록도 남겼다.

그는 국제재판소 경험에 대해 “매일 국제 재판의 새로운 선례를 만드는 일이라 정말 흥미롭다”고 소개했다.

권 재판관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법조계에서는 국가 원수를 형사처벌하는 게 국가주권이론에 반하기 때문에 히로히토 일왕을 전범으로 국제형사재판에 넘길 수 없다는 이론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어 “ICTY는 이런 과거 이론을 극복하고 처음으로 국가 원수(유고연방공화국 대통령)였던 밀로셰비치를 재판정에 세우는 예를 만들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권 재판관은 보스니아 내전 당시 대량 학살을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는 세르비아계 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의 재판에서 재판장을 맡고 있다. 2014년 하반기 선고를 목표로 하는 그는 “귀국 전 카라지치의 11개 죄목 중 제노사이드(인종말살) 혐의는 대량 살상이긴 하나 인종 말살로 볼 근거가 부족해 무죄 판단했다”고 말했다.

권 재판관은 “재판이 공정하게 보이도록 제도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며 “재판의 권위는 설득력 있는 판결 이유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