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낯선 도시에 도착했다. 이정표조차 보이지 않는 깜깜한 풍경이 조금은 무섭게 느껴질 찰나, 코끝에 라벤더 향을 그득 머금은 바람이 스쳐갔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남프랑스, 제대로 도착했구나.’

프랑스 남쪽 프로방스는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로 끝없이 뻗은 라벤더와 해바라기밭, 포도나무와 와인으로 요약된다. 어딜 보아도 넓게 펼쳐져 있는 해바라기밭을 보고 있으면 남프랑스의 태양을 사랑했던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이 눈앞에 살아나는 느낌이다. 유명 여행지인 지중해 연안 코트다쥐르보다는 조금 소박하지만, 생명력으로 이글거리는 대지 위에서 시간을 잊은 채 걷고 먹고 쉬는 대표적인 웰빙 여행지다.

◆고대 유적 숨쉬는 오랑주

프로방스 론(Rhone)강 유역에 자리한 도시 오랑주에서 여정을 시작했다. 론강은 남프랑스 토지의 생명 줄기다. 고흐의 작품 ‘별이 빛나는 밤에’의 무대가 된 강이기도 하다. 스위스에서 시작된 물줄기는 리옹에서 합류, 남북으로 이어져 지중해까지 연결된다. 포도, 해바라기 등 주요 농작물의 경작지는 이 강을 끼고 양 옆으로 넓게 펼쳐져 있다.

오랑주는 ‘물의 신’이라는 뜻의 ‘아우라시오’라 불리던 켈트족의 거주지였다. 도시에 들어서니 세월의 흔적을 가득 머금은 건축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오랑주는 기원전 36년 아우구스투스의 제2군대가 이곳에 있던 갈리아 주민을 정복하면서 요새도시가 됐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은 고대 극장과 개선문이다.

오랑주의 고대 극장은 무대 외벽의 길이가 103m, 높이가 36m에 이르는 웅장한 규모다. 그 한가운데 4m 높이의 아우구스투스 석상이 서 있다. 8000명 가까이 수용할 수 있는 이 극장에는 연중 오페라, 콘서트, 연극 등 다양한 장르의 야외 공연이 열린다. 극장 양옆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볼 수도 있고 무대에 서서 크게 한번 소리를 질러보는 것도 좋다. 작게 말을 해도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뛰어난 음향 효과를 자랑한다.

이 극장은 로마제국 점령 당시 오랑주 시민을 위한 오락 장소이자 정치적인 선전이나 집회의 장소로도 활용됐다. 4세기 들어 주교가 이 극장을 불경스럽다고 폐쇄했고, 중세시대에는 무기창고나 수도사들의 거점으로 이용되다가 19세기 중반에 가서야 극장의 모습을 되찾았다.

오랑주 북쪽에 있는 ‘승리의 문’은 새로운 도시 건설을 축하하고 로마 군대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지은 것. 기원전 10~25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개선문은 폭 8.5m에 높이 19m의 거대한 건축물이다. 전쟁에서 로마 군대의 전투 모습을 담은 벽면 부조가 인상적이다. 고대 로마 제국 역사의 상징인 오랑주의 로마 극장과 개선문은 198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됐다. 오래된 골목길을 느긋하게 걷다가 발 닿는 노천의 바에서 즐기는 음식과 와인은 최고의 맛을 자랑한다.

◆대를 잇는 와인 ‘샤토뇌프 뒤 파프’

다음 날, 오랑주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와인마을 ‘샤토뇌프 뒤 파프(Chateauneuf du Pape·교황의 새로운 성)’로 향했다. 가는 길 내내 보이는 건 황토색 대지 위에 푸른 잎을 드러낸 포도나무, 보라색 라벤더, 노란 얼굴을 한 해바라기뿐. 샤토뇌프 뒤 파프는 보르도, 부르고뉴와 함께 프랑스 3대 와이너리 중 하나다. 대부분이 가족경영을 하지만 생산량으로만 보면 보르도에 이어 2위다.

마을 중심부에 이르자 크고 작은 와이너리를 안내하는 수많은 이정표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마을에서 와인 생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만 5만여명. 이들 중 90%는 개인 카브(와인 저장고)와 농장을 갖고 있다. 여행안내소에 물어보니 “돌아다니다가 와인병이 걸려 있는 카브는 어디든 들어가보라”고 했다. 쨍쨍 내리쬐는 햇볕을 피할 겸 들어간 카브는 시원하다 못해 서늘할 정도였다. 권해주는 와인을 한 모금 마시니 강렬하고 짙은 맛이 혀를 감쌌다. 품질을 위해 이곳 포도의 와인 산출량은 어느 지역보다도 적지만, 반드시 손으로 수확해야 한다. 자연 알코올 함유량이 적어도 12.5%는 돼야 합격(A.O.C등급 기준)이다. 수확량 중 최소 5%는 버리고 가장 건강한 포도만 선별한단다.

이 마을의 포도나무는 골족에 의해 알려졌다. 13세기 10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던 마을에 로마인들이 거대한 포도밭을 가꾸기 시작했고 대부분의 와인이 부르고뉴 지역으로 팔려나갔다고 알려진다. 그러다가 이 지역 와인이 인기를 끌게 된 건 로마 교황청에 들어가지 못하고 근처 아비뇽에 머물러 있던 교황들에 의해서였다. 1308년 클레멘스 5세는 죽기 몇 해 전 포도나무를 이곳에 심었고, 그 뒤를 이은 교황 요한 22세는 이곳의 와인을 공식적인 세례에 사용하며 ‘교황의 와인’으로 이름 붙였다. 이 지역에서 나오는 모든 와인병에는 교황의 모자와 두 개의 열쇠가 그려져 있다. 하나는 교황청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 다른 하나는 천국으로 가는 열쇠라고 한다.

2007년 세계적 와인전문지 ‘와인 스펙테이터’가 전 세계 1만5000여종의 와인 가운데 1위로 꼽은 2005년산 샤토뇌프 뒤 파프를 찾으러 ‘클로 데 파프’를 찾아갔다. 17세기부터 집안 대대로 전해내려온 양조법으로 만들어낸 붉은 빛깔의 와인, 이게 바로 ‘신의 물방울’이 아닐까.


◆교황의 별장에서 마시는 와인

샤토뇌프 뒤 파프에선 가장 높은 언덕까지 올라야 한다. 교황 요한 22세는 여름 별장으로 이 마을의 꼭대기에 성을 짓게 했다. 이 성의 흔적은 지금도 이 마을의 상징처럼 우뚝 서 있다. 막상 가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거의 허물어진 채 한쪽 벽면만 서 있고, 허물어진 벽 사이로 론강과 마을 전체가 내려다보인다.

사연은 이렇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이 성에 폭탄을 저장했다. 전쟁에서 열세에 몰리자 이곳을 지키던 두 독일 장교는 폭탄을 폭파시키라는 명령을 받는다. 한 장교는 명령에 복종해 한쪽을 파괴했지만 다른 한 장교는 문화유산을 생각해 폭파하지 않았다는 것.

성벽 바로 아래 첫 문을 통과하면 ‘교황의 과수원(le verger des papes)’이라는 레스토랑이 나온다. 소나무, 올리브와 아몬드 나무 그늘 아래 테라스에서 마을과 그 포도밭을 내려다보며 느긋한 한때를 보낼 수 있다. 20유로(약 2만4000원) 내외에 최고급 와인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유럽 전역과 미국에서 몰려오는 사람들로 늘 붐빈다. 이 지역 사람들 대부분은 영어로 말을 걸어도 친절하게 응대한다. 남프로방스는 한낮 기온이 36도까지 치솟는 경우가 많아 스페인 사람들처럼 정오의 낮잠(시에스타)을 즐긴다. 나무 그늘 아래 테이블은 늦은 아침부터 이미 바캉스를 즐기러 온 사람들로 꽉 찬다. 이른 아침부터 해가 뉘엿해질 때까지 와인을 즐기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후의 여유를 만끽해본다. 동쪽으로 아비뇽과 교황 궁전, 남쪽으로는 론강의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졌다.

오랑주(프랑스)=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