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 한국외대 총장·이덕선 ATG 회장 "日은 국내 안주하다 침체…글로벌 감각 키워 세계와 소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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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가 만난 모교 총장]
오바마가 한국외대 찾은 건 글로벌 역량 높게 평가한 덕…기업 해외지사 인턴 채용 많아졌으면
외국어·현지문화 이해 높여야 유학 후 귀국보다는 더 큰 도전을
기업은 맞춤형 학과 지원 늘려야
오바마가 한국외대 찾은 건 글로벌 역량 높게 평가한 덕…기업 해외지사 인턴 채용 많아졌으면
외국어·현지문화 이해 높여야 유학 후 귀국보다는 더 큰 도전을
기업은 맞춤형 학과 지원 늘려야
지난 3월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특강 장소로 한국외국어대를 선정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 이유를 궁금해 했다. 한국외대는 당시 ‘오직 외국어대라는 이름 덕’ ‘미국이 한국 대학들을 잘 몰라서’ 등의 질투 어린 폄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선정 과정을 들여다 보면 한국외대가 단지 이름 덕분에 선택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한 미국 대사관은 물론 백악관의 교육, 안보, 외교 전문가들이 국내 4~5개 대학에 대한 세 차례 실사를 거쳐 뽑은 곳이 바로 한국외대였다.
박철 한국외대 총장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한국 경제의 기적이 세계로 뻗어나간 한국인들의 활약에서 비롯됐고, 그런 글로벌 인재를 키워내는 데 한국외대가 앞장서 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서울 이문동 한국외대 총장실에서 진행된 총장과 동문 최고경영자(CEO) 대담에서도 주제는 ‘글로벌 인재’였다. 한국외대가 낳은 세계적인 기업가인 이덕선 미국 얼라이드테크놀로지(ATG) 회장은 박 총장과 만나 대학의 글로벌 인재양성 방안에 대해 집중적으로 대화를 나눴다.
▷사회=오바마 대통령의 한국외대 특강이 화제가 됐었습니다.
▷이덕선 회장=교민 사회에선 아직도 그 얘기가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한국외대 동문들도 영광으로 생각하지만 교포들도 자랑스러워 합니다. 한국인이 해외에서 잘 한다는 평가를 받은 덕에 글로벌을 지향하는 한국외대가 선택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외대가 45개국 언어를 가르치고 있는데 이는 프랑스 이날코대(93개)와 러시아 엠기모(53개)에 이어 세 번째라고 하더군요.
▷박철 총장=오바마 대통령이 연설 속에서 선정 이유로 ‘외국어 교육’과 ‘글로벌 인재’ 두 가지를 들었습니다. 외국어도 중요하지만 그걸 바탕으로 세계로 진출하는 인재를 양성한 데에 큰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한국 경제의 기적은 결국 교육의 힘에 의한 것이고, 교육 중에서도 글로벌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핵심 원동력입니다. 한국외대는 그런 면에서 한국 교육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받고 있습니다.
▷사회=‘글로벌’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박 총장=한국처럼 작은 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된 저력이 세계 진출 말고 무엇이 더 있겠습니까. 수많은 젊은이들이 맨몸으로 해외에 나가 도전하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이뤄낸 것이 한국의 기적입니다. 글로벌 마인드와 도전 정신을 가진 인재는 앞으로 더 많이 필요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창의성도 있겠지만, 창의성은 많은 것을 보고 도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습니다.
▷이 회장=젊은이들은 그래서 국제 문제나 국가 간 정치·경제 관계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현지에서 성공하려면 탄탄한 외국어 실력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이해력을 갖춰야 합니다. 미국이나 남미 등지에서 성공한 동문들을 만나보면 현지 정치나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회=선진국 대학들도 ‘글로벌’을 중시하나요.
▷박 총장=미국이나 유럽 대학들은 2000년 이전만 해도 자국에 안주하거나 서로 교류하는 정도였습니다. 굳이 아시아나 아프리카에 가보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2001년 9·11 테러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통해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믿음과 가치들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면서 생각이 바뀌고 있습니다. 미국 프린스턴대 부총장을 얼마 전 만났는데, 2~3년 전부터 5년 졸업을 의무화했다고 하더군요. 4년은 공부하고 1년은 의무적으로 해외에서 봉사나 연수 경험을 갖도록 하는 것이죠. 하버드나 예일대도 그렇게 바뀌고 있다고 합니다.
▷이 회장=미국에서 보면 한국과 중국에선 아직도 유학을 많이 옵니다. 반면 일본인 유학생은 점점 찾아보기 힘들어집니다. 요즘 일본 젊은이들은 ‘일본에 있어도 잘 살 수 있는데 구태여 나갈 필요 없다’는 생각을 많이들 한다는군요. 그러다 보니 일본 사회 역시 도전 정신과 글로벌 감각을 잃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일본의 침체 역시 그런 데서 비롯된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박 총장=회장님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고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해외로 나가지 않으면 발전하기 어렵습니다. 정부도 젊은이들이 해외로 더 많이 나갈 수 있도록 지원을 늘려야 합니다.
▷이 회장=다만 한국 젊은이들은 유학을 마치면 귀국하려는 경향이 많아 아쉽습니다. 좋은 직장을 구한 이들은 미국에 남지만 기준에 조금 못 미치면 그냥 쉽게 한국으로 돌아가 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더 큰 사람이 되서 사회에 공헌하려면 도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회=대학과 정부, 그리고 젊은이들은 각각 어떤 노력을 해야 합니까.
▷박 총장=한국외대는 2006년부터 의무 복수전공제를 도입했습니다. 외국어 전공 학생들에게 경영이나 법, 공학 등을 의무적으로 배우게 한 것이죠. 또 8학기 중 한 학기는 해외 대학에서 다니도록 하는 ‘7+1’제도나 한국외대에서 2년, 해외 대학에서 2년을 배우면 복수학위를 주는 ‘2+2’제도도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도는 투자 없이는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작년에 터져나온 ‘반값 등록금’ 논란은 대학의 투자 확대에 큰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이 회장=젊은이들에게는 우선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비즈니스를 포함해 모든 일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그 관계는 소통으로 발전합니다. 소통의 기본은 언어죠. 영어는 세계 공통 비즈니스 언어입니다. 싱가포르와 홍콩이 아시아 금융과 교육의 허브가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영어 때문입니다.
▷사회=기업과 대학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길은 어떤 것인가요.
▷이 회장=회사를 운영하다 보니 좋은 인재 구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절감합니다. 대학과 기업이 함께 발전하려면 바로 이런 인재 육성에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한국에서 최근 생겨나기 시작한 기업 맞춤형 학과들의 경우 미국에선 이미 1970년대부터 시작됐습니다. 맞춤형 졸업생을 받으면 장기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것을 기업이 확실히 깨달을 수 있도록 대학이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합니다.
▷박 총장=산학협력이 단순히 과학기술 연구·개발(R&D)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재 양성의 중요한 수단이라는 것을 대학과 기업이 함께 인식해야 합니다. 글로벌 마인드를 강화하기 위해 기업들이 해외 지사에 대학생 인턴을 적극적으로 채용해줬으면 합니다. 기업 실무와 함께 글로벌 마인드와 언어 능력, 도전 정신까지 한꺼번에 키울 수 있는 길이 바로 해외 장기 인턴입니다.
▷사회=젊은이들은 어떤 덕목을 갖춘 인재가 돼야 할까요.
▷박 총장=우리 청년들이 세계 속에서 한국의 위상을 좀 더 정확히 파악하고 거기에 걸맞은 봉사 정신과 품격을 갖춰야 합니다. 세계는 지금 한국의 발전 과정을 궁금해 하면서 단기 급성장을 이룬 한국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만큼 한국인에게 거는 기대도 크죠. 우리 젊은이들은 봉사 정신을 갖고 세계에 기여하는 민족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 회장=다음 세대의 인성 교육에 더 힘써야 합니다. 기업은 물론 한 국가를 발전시키는 것은 결국 실력과 인성을 갖춘 인재이기 때문입니다.
사회 허원순 지식사회부장 / 정리=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박철 총장은…
박철 한국외국어대 총장(63)은 한국외대 스페인어과(68학번)에서 학사와 석사를 받은 후 스페인 마드리드국립대에서 문학 박사를 받았다. 1985년 모교 교수로 부임해 2006년 8대 총장에 선임됐고 2010년 재선임됐다.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회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2004년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국내 최초로 완역하기도 했다. 2009년에는 스페인 왕립한림원 종신회원으로 선출됐다.
이덕선 회장은…
이덕선 회장(73)은 황해도 연백 출신으로 한국외국어대 독어과(58학번)를 다니다 생계를 위해 중퇴하고 1968년 미국으로 이민갔다. 1986년 얼라이드테크놀로지(ATG)를 창업해 직원 600명, 연 매출 1억달러의 컴퓨터 보안 전문업체로 성장시켰다.
1999년 모교인 한국외대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가톨릭대에 300만달러, 한국외대에 130만달러 등을 기부했다. 회사 근거지인 미국 워싱턴에서도 대학과 지역사회, 한인단체에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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