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조원대 경제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구속기소된 박연호 부산저축은행그룹 회장(62·사진)이 항소심에서 징역 12년의 실형 판결을 받았다. 지난 2월 1심 선고(징역 7년) 때보다 형량이 대폭 늘어났다.

‘그룹 회장으로 범행을 통해 가장 큰 이익을 얻었고, 최고 책임자로서 김양 부회장(59) 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등 반성의 기색이 없다’는 게 항소심에서 형량이 오히려 가중된 주요 요인으로, 지난 16일 서울서부지법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1심 실형 선고 이유와 비슷해 주목된다.

서울고법 형사6부(부장판사 정형식)는 17일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박 회장에 대해 징역 12년을 선고한 반면 1심에서 박 회장보다 높은 형량(징역 14년)을 선고받은 김 부회장에 대해서는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박 회장은 그룹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로, 그룹이 저지른 경제범죄에 대해 지시 내지 용인한 점이 인정된다”며 “이 사건 범행에서 가장 많은 이득을 얻은 박 회장이 항소심에서도 최고 책임자로서 책임을 지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 한편 김 부회장에게 부당한 처우를 받아왔다는 주장을 하고 있어 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박 회장은 그룹의 범죄에 대한 주된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반면 그룹의 경제범죄 및 로비 등을 주도한 혐의로 1심에서 그룹 경영진 중 가장 중한 판결을 받은 김 부회장에 대해서는 “그룹 부실을 주도한 장본인으로, 실질적으로 범행을 주도한 자로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서도 “범행 대부분을 시인하고 잘못을 뉘우치는 점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박 회장과 김 부회장의 주된 혐의 중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부분을 크게 변경하지 않았다. 그러나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선고된 안아순 전무(58)는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박 회장 등 그룹 경영진은 불법대출 6조315억원, 분식회계 3조353억원, 위법배당 112억원 등 총 9조780억원대 경제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수사를 받고 지난해 기소됐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