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식 아이센스 사장, 피 한방울로 5초안에 혈당체크…10년 만에 4000만弗 수출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파워기업인 생생토크] 제자 일자리 위해 광운대 실험실서 창업
주택가 '화학공장', 반대 주민들 설득
직원 16% 석·박사…다국적기업 경쟁 이기고 혈당측정기 60개국 수출
차세대 성장엔진 전해질 분석기 매출 확대 주력
주택가 '화학공장', 반대 주민들 설득
직원 16% 석·박사…다국적기업 경쟁 이기고 혈당측정기 60개국 수출
차세대 성장엔진 전해질 분석기 매출 확대 주력
2002년 초 서울 월계동의 광운대 근처. 주민들이 몰려나와 시위를 하고 있었다. “아니 주택가에 화학공장을 짓는다니 말이나 돼. 폭발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할아버지 할머니 아주머니 등 수십명이 연일 거세게 반발했다.
차근식 아이센스 사장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주민들을 설득하는 데 며칠이 걸렸다. 아이센스는 광운대 화학과 교수들과 이 학교 석·박사과정 연구원들이 2000년 대학 내 실험실에서 시작한 회사다. 공동 창업자인 차근식 사장(58)과 남학현 부사장(53·최고기술책임자)은 모두 광운대 화학과 교수다.
실험실에서 대학 창업보육센터로 옮겼으나 비좁기는 매한가지였다. 모두 대학에 적을 두고 있어 제조시설을 먼 곳에 만들 수도 없었다. 게다가 교수와 학생들 처지에 돈도 넉넉할 리 없고. 창업한 지 2년 만에 십시일반으로 자금을 모아 대학 인근에 작은 건물을 지어 지하에 제조시설을 만들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화학과 출신’들이 혈당측정기 조립시설을 만든다는 게 ‘화학공장’으로 와전돼 주민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차 사장과 남 부사장은 석·박사 과정의 제자들에게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창업전선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제자들이 대기업이나 중견·벤처기업에 취업할 수 있었으나 대부분 전공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일하다보니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던 참이었다. 교수 2명과 제자 5명 등 7명이 창업멤버로 나섰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 이 회사의 연 매출은 523억원(2011년), 종업원은 380명으로 늘었다. 본사는 월계동에 그대로 있지만 생산시설은 원주와 인천 송도에 갖췄다.
이 회사의 주력 제품은 혈당측정기다. 간편하게 미량의 혈액으로 혈당을 잴 수 있는 기기다. 수출국가는 60여개국에 이른다. 차 사장은 “최근 1년간(2011년 7월~2012년 6월) 수출액은 4000만달러가 넘었다”고 설명했다. 매출의 80%를 수출을 통해 거둔다. 글로벌 제약업체나 의료기기업체들이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가운데 이들과 치열한 경쟁 끝에 일궈낸 성과다. 실험실 벤처로 창업한 이 회사가 10년 새 어떻게 급성장할 수 있었을까.
첫째, 배트맨과 로빈처럼 호흡이 잘 맞는 콤비 경영진이다. 고려대 화학과를 나와 미시간대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은 차 사장과 서울대 화학과를 나와 미시간주립대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은 남 부사장은 1990년대 초 광운대 교수로 부임했다. 이들의 성격은 정반대다. 차 사장은 일을 벌이는 스타일이다. 반면 남 부사장은 차분하게 수습하며 내부를 챙긴다. 차 사장은 중·고등학교와 대학 재학 중 밴드부에서 활동할 정도로 활달한 반면 남 부사장은 학구파다. 차 사장이 1954년생으로 1959년생인 남 부사장보다 다섯 살 위이고 성격도 서로 다르지만 가치관과 지향점은 비슷하다. 그러다 보니 상호보완적이면서 호흡이 척척 맞는다.
둘째, 뛰어난 기술력이다. 차 사장과 남 부사장은 바이오센서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갖고 있다. 창업 전에도 여러 업체
의 기술개발을 돕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자신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 뛰어들어 아이센스를 창업했고 혈당측정기를 개발했다.
이 회사가 갖고 있거나 출원한 국내외 특허는 148건에 이른다. 차 사장은 “우리가 생산하는 혈당측정기의 품질은 다국적기업 제품과 겨룰 만하고 가격은 저렴해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의 혈당측정기는 0.5㎕의 극소량 피로 5초 안에 혈당을 잴 수 있다. 크기는 담뱃갑 정도에 불과하다.
셋째, 인재에 대한 투자다. 이 회사 종업원 380명 중 박사가 12명에 이른다. 이 중 9명은 퍼듀대 미시간대 등 미국이나 일본에서 학위를 딴 사람들이다. 석사는 49명이다. 전체 종업원 가운데 16%가 석·박사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주로 연구개발부서에서 일한다. 차 사장은 인재 흡인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다. 그 스스로도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기업도 필요한 인재들을 구해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하는데 이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차 사장은 “좋은 인재와 기술력이 바탕이 된 데다 믿을 만한 해외 거래처를 만나 수출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이 회사의 매출은 2005년 32억원에서 2007년 176억원, 2009년 378억원, 2011년에는 523억원으로 뜀박질했다. 6년 새 16배 늘어난 것이다. 최근 송도 공장 준공을 계기로 연간 생산능력이 종전 10억 스트립(strip·혈액을 흡수해 측정값을 기기로 보내주는 시험지)에서 18억 스트립으로 80% 늘어났다. 차 사장은 “생산시설을 무작정 늘린 게 아니라 유럽과 일본 굴지의 기업들이 우리 제품을 팔아주기로 미리 언질을 줘서 확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 매출은 혈당측정기 자체보다는 시험지인 스트립 판매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난다. 마치 프린터업체가 프린터 자체보다 잉크카트리지를 팔아 돈을 버는 것과 비슷한 구조다.
차 사장은 세 가지 목표를 갖고 있다. 우선 기존 혈당측정기의 정확도를 더욱 높이는 것이다. 그는 “글로벌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정확도 싸움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만큼 이를 더욱 높여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 다음은 차세대 주력 제품인 전해질 분석기의 매출 확대다. “전해질 분석기는 혈액 속의 칼륨 염소 등 이온을 분석하는 장비로 우리의 인력 구성과 기술력에 딱 들어맞는 아이템입니다.” 차 사장의 설명이다. 2009년 국내 최초로 이 제품을 개발한 데 이어 올해는 동물용 전해질 분석기를 출시하는 등 사업이 점차 궤도에 올라서고 있다. 차 사장은 “아직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 미만에 불과하지만 이 제품이 앞으로 우리 회사의 먹거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또 하나는 지속 성장하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차 사장은 “우리 회사 직원 중에는 다국적기업이나 대기업에서 일하다 온 경우가 많은데 이들이 성취감을 맛보고 경영진으로 클 수 있도록 해주려면 회사가 지속적으로 성장해야 한다”며 “동시에 과실을 적절히 분배해 더불어 살아가는 기업문화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