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 "1원에 공급 못해" vs 병원 "하던대로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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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Story] '병원약품 1원 낙찰' 관행 둘러싼 공방
제약업계,보훈병원 공급 중단…보훈병원, 공정위에 제소
공정위 "담합 여부 검토"…복지부 "공정위 판단 주시"
제약업계,보훈병원 공급 중단…보훈병원, 공정위에 제소
공정위 "담합 여부 검토"…복지부 "공정위 판단 주시"
병원 납품 약값 ‘1원 낙찰’ 관행을 두고 제약업계와 병원계가 정면 충돌하고 있다. 제약업계는 오랜 관행인 1원 낙찰의 고리를 끊겠다며 벼르고 있고, 병원계는 제약사들이 담합으로 시장질서를 흐트러뜨리고 있다고 맞서고 있다.
16일 관계당국과 업계에 따르면 전국에 5개 병원과 4개 요양원을 두고 있는 보훈공단은 최근 동아제약 녹십자 대웅제약 등 13개 제약사를 1원 낙찰 의약품 공급거부에 따른 담합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조사를 의뢰했다. 김재신 공정위 카르텔조사국 과장은 “개별 제약사뿐 아니라 제약협회가 개입돼 있어 사안이 복잡하다”며 “어떤 불공정 행위로 판단할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사건은 지난달 초 보훈공단 산하 중앙보훈병원에서 진행된 의약품 입찰에서 1원 낙찰된 84개 품목에 대해 제약협회 소속 제약사들이 공급을 거부하면서 시작됐다. 1원 낙찰 관행은 병원 문을 뚫기 위해(처방코드를 받기 위해) 입찰가를 최저로 써낸 뒤, 낙찰되면 정상가로 공급되는 원외 처방 분야에서 손실을 메우는 방식의 영업 구조 속에서 기생해왔다. 보통 의약품 1개 품목당 원내(입원환자)처방과 원외(외래환자)처방 비율은 2 대 8 정도다. 1원 낙찰 관행은 ‘약품 원가가 얼마나 싸길래’라는 부정적 인식을 불러왔고 결국 정부가 올해 단행한 약값 인하의 빌미가 됐다.
리베이트 제공 가능성을 높인다는 지적도 받았다. 포장단위별 약품 원가가 항생제 주사제 수액 등 종류에 따라 수백~수만원대로 천차만별인 만큼, 손실(원가-1원) 보전을 넘어 이익까지 내려면 원외 공급량을 확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보훈공단과 제약협회는 서로 정반대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공단은 다른 종합병원에는 업계가 1원 낙찰 품목을 공급하면서 보훈병원만 배제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공단 관계자는 “당시 입찰에서 1개 품목에만 80여개 도매상이 달려들어 1원에 입찰할 정도로 과열 양상을 보였다”며 “병원이 1원 입찰을 유도한 것도 아닌데 약품 공급 중단으로 진료 차질이 생겼다”고 말했다. 또 “1원 낙찰은 제약사가 도매상에 1원 입찰 오더(명령)를 내리는 조직적 행위”라고 주장했다.
반면 제약협회는 부당한 관행을 근절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입장이다. 협회는 “1원 낙찰을 뿌리뽑지 않으면 제약사의 경쟁력과 신뢰도를 높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앞으로 보훈병원뿐 아니라 모든 병원에 대해서 1원 낙찰을 하는 제약업체와 도매상을 색출해 제명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공단과는 정반대로 1원 낙찰은 ‘병원과 특정 도매상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지만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손을 놓고 있다. 정경실 복지부 의약품정책과장은 “약사법은 약 판매와 조제, 오남용이 국민건강에 미치는 영향 등에 초점을 두고 있고 1원 낙찰을 통제할 관련 규정은 없다”면서 “비정상적인 관행인 만큼 공정위 판단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1원 낙찰이 제약업계만의 문제는 아닌 만큼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사안을 조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담합이나 사업자단체금지행위로 판단되면 제약사와 제약협회 등 관련자들은 3년 이하 징역이나 2억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시정조치와 과징금은 별도다. 부당염매(廉賣·덤핑)로 판단될 소지도 없지 않다. 공정거래법은 특정 업체가 원가 이하로 염매행위를 상당 기간 지속하면서 경쟁사업자를 시장에서 쫓아낼 의도가 있다고 판단되면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약값 인하, 상시 리베이트 단속 등으로 된서리를 맞고 있는 제약업계가 1원 낙찰이라는 벌집을 쑤셔놓는 자충수를 둔 것인지, 아니면 이번 사건을 통해 오랜 악습인 1원 낙찰이 사라지는 계기가 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