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법안’을 쏟아내는 여야 정치권 덕분에 법무법인(로펌) 공정거래팀이 바빠졌다. 아직 설익은 상태지만 입법 동향을 살피고 해외의 유사제도를 파악하느라 여름 휴가철도 잊고 분주하다. 직접 이해 당사자이자 최대 고객인 대기업들이 향후 입법 방향과 대응 방안까지 수시로 문의하고 있어 이들이 맡길 대형 용역에 대비하는 것이다.

◆“5~10년 일거리 걱정 안해도 될 듯”

A로펌 공정거래팀은 요즘 매일 회의를 열고 있다. 태스크포스도 만들었고 경제민주화법안 관련 언론보도도 빠짐없이 스크랩한다. 이 로펌 소속 변호사는 “로펌마다 거래하는 기업들이 있긴 하지만 준비를 잘 하고 있으면 비딩(입찰)할 때 유리하다”며 “특히 순환출자 등 기업 경영권과 관련된 민감한 부분들은 (로펌으로선) 실수가 용납되지 않기 때문에 관련 제도를 미리 정확하게 알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이 로펌은 관련 입법을 추진 중인 의원이나 각 당의 핵심 당직자들을 통해 향후 입법 방향을 사전 탐문하는 일도 진행 중이다.

B로펌 변호사는 “공정거래 분야에선 앞으로 5~10년 일거리는 걱정 안해도 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로펌업계는 그러나 “정치권이 너무 앞서간다”며 입법화 등 각종 경제민주화법안의 구체적 실현가능성에 대해선 의문을 제기하는 분위기도 강하다. 위헌적 요소가 많은데다 기존 공정거래법과 맞지 않는 내용도 적지않기 때문이다.

C로펌 변호사는 “공정거래법(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은 경쟁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목표인데 경제민주화법안들은 효율성이 떨어지는 평등과 배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기존 법체계와 맞지 않다”며 “입법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선거를 앞두고 표심잡기 차원에 그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향후 구체적인 공약으로 만들어져 실제 입법의 윤곽이 드러났을 때 공청회 등에서 입장을 표명해도 늦지 않다”(공정위 부위원장 출신 D로펌 고문)는 견해가 나오는 이유다.

로펌 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 내부에선 최근 정치권의 경제민주화법안 논의에 동원되지 않으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신문업계의 과당경쟁을 막겠다며 신문고시를 만들었다가 시행에 차질이 빚어지자 관련 공무원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준 과거사례도 공정위 내부에서 새삼 회자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거래 전문가’ 로펌에 대거 포진

로펌업계에서 공정거래 분야의 비중은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기업 인수·합병(M&A), 금융, 송무와 더불어 핵심 수입원(캐시카우)으로 자리잡았다는 게 로펌업계 평가다. 지난 6월 바른의 공정거래팀이 통째로 화우로 옮기는 등 전쟁을 방불케하는 인재쟁탈전이 벌어지는 이유다.

스타급 전문가들도 즐비하다. 김앤장에는 정경택 박성엽 안재홍 황창식 변호사를 주축으로 총 60명의 전문가들이 포진하고 있다. 광장은 안용석 김성만 정환 변호사가, 태평양은 오금석 윤성운 변호사가 각 20여명의 전문가그룹을 이끌고 있다. 세종에선 판사 출신으로 공정위에서 하도급국장까지 지낸 임영철 변호사와 조창영 박주영 변호사가, 율촌은 윤세리 강희철 박해식 변호사가 각각 대표선수로 꼽힌다. ‘친정’사정을 꿰뚫고 있는 전관들의 활약상이 두드러진 곳도 공정거래 분야다. 공정위 부위원장을 지낸 김앤장의 김병일 고문, 광장의 조학국 고문, 화우의 손인옥 고문 등이 대표적 사례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