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전봇대 제조업체인 ‘원기업’의 사무실에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동종업체인 일본 요시모토폴사로부터 가로등 ‘디자인폴’을 공급해 달라는 제안을 받은 것. 2009년 요시모토폴로부터 디자인폴에 대한 원천 기술을 이전받은 지 3년 만에 역수출하게 됐다. 비결은 연마 기술을 개선해 생산 단가를 획기적으로(약 1/4 수준) 낮춘 것과 함께 또 하나는 바로 ‘디자인’이었다.

디자인폴은 콘크리트와 천연석을 혼합·연마한 ‘친환경 혼합석재’로 만들어진 가로등이다. 철재나 스테인리스 제품에 비해 부식 염려가 없고 내구성도 뛰어나다. 원부성 원기업 회장은 수년 전 일본 오다이바 지역을 방문했을 때 이 제품을 본 후 곧바로 생산업체인 요시모토폴사와 기술 제휴를 맺고 생산을 시작했다.

역수출의 계기가 된 것은 원기업이 만든 디자인폴의 사진이었다. 이 회사는 서울 코엑스 아셈로에 설치된 디자인폴 제품 사진을 찍어 요시모토폴사에 보냈다. 그러자 요시모토폴 측에서 바로 반응이 나왔다. 자신들이 개발한 가로등보다 더 깔끔하고 미니멀한 디자인이 보기 좋다는 것. 또 두께 차이가 전혀 없는데도 자신들의 제품보다 훨씬 얇아 보인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원기업이 가로등에 부착한 금속류가 더 얇게 보이게 하는 착시효과를 일으킨 것. 원기업 측은 “기술을 들여오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디자인을 접목시켰더니 역수출의 길이 열렸다”면서 “미국에도 곧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디자인 개선으로 해외 시장에서 호평을 받는 중소기업들이 늘고 있다. 원기업처럼 디자인이 중요시되지 않던 품목에 디자인 개념을 접목시켜 수출길을 뚫는 경우가 주목된다.

LS엠트론은 트랙터에 유선형 디자인을 가미했다. 기존의 투박한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한 것. LS엠트론은 현재 북미, 유럽 등 24개국에 수출하고 있으며 지난해 수출 규모는 1억달러를 넘어섰다.

오디오업체인 에스엔케이는 스피커 ‘바이본324’모델을 개발해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 제품은 전통 한지 공예를 적용한 대형 인테리어 혼스피커다. 혼스피커는 멀리까지 소리가 잘 퍼져 주로 야외 행사용으로 많이 사용된다. 이 때문에 디자인보단 성능이 중시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에스엔케이는 한지를 이용해 부드러운 이미지를 강조하고 실내에서 인테리어 제품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회사는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에 제품을 수출키로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디자인진흥원(KIDP)에 따르면 제품 디자인을 개선할 경우 매출은 평균 14.4배가량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현재 국내 중소업체 중 12%만이 디자이너를 고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태용 KIDP 원장은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디자인 개발을 비용이 아닌 투자로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