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인터뷰] "내 청춘 바친 독도인데…日억지에 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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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년전 독도의용수비대 활약 정원도 옹
1953년 '일본령' 표지 부수고 독도암벽에 '한국령' 한자 새겨
의용대원 22명중 10명만 생존…"늦었지만 대통령 다녀가 기뻐"
1953년 '일본령' 표지 부수고 독도암벽에 '한국령' 한자 새겨
의용대원 22명중 10명만 생존…"늦었지만 대통령 다녀가 기뻐"
스물 다섯 혈기왕성한 나이에 독도의용수비대원으로 활동했던 정원도 씨(84·경북 울릉군 울릉읍)는 59년 전 그때로 돌아간 듯했다. 정씨는 요즘 심기가 불편하다. 지난달 31일 일본 정부가 ‘2012년 방위백서’를 통해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며 해묵은 억지 주장을 되풀이했기 때문이다.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기자와 만난 그는 “늦은 감은 있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다녀간 것으로도 만족한다”며 “59년 전 독도에서 살면서 섬을 지켜낸 사람들이 두 눈 뜨고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일본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으니 분하고 속상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이 대통령의 방문에다 노골적인 일본의 국제분쟁 지역화 속셈으로 독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제67주년 광복절을 맞아 울릉도 도동에 있는 정씨의 자택을 찾았다.
팔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에 목소리가 우렁찼다. 집안에 들어서자 소파 뒤쪽 벽에 걸린 독도 사진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니 세월의 흔적으로 누렇게 바랜 흑백사진이었다. 사진을 가리키며 그는 “독도를 다녀온 한 관광객이 선물로 주고 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10여년 넘게 간직한 사진을 통해 독도에 대한 그의 애정과 열정을 엿볼 수 있었다. 정씨가 독도의용수비대에 참가한 건 1953년 4월. 1948년 군에 입대한 뒤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총상을 입고 제대한 그는 고향인 울릉도로 돌아갔다. 귀향하자마자 그는 일본이 독도에 ‘일본령’이란 표지를 세웠다는 소식에 바로 독도 지키기에 나섰다.
정씨는 “처음엔 대원이 10명에 불과했지만 3년간 33명이 모였다. 독도에 들어가 일본령 표지를 제거하고 들락날락하던 일본 배를 쫓아냈다”며 “독도 암벽에 새겨져 있는 ‘한국령’이란 한자도 당시에 만들었다”고 증언했다.
당시 독도의용수비대는 울릉경찰서로부터 박격포, 직사포, 소총 실탄 2만여발을 지급받고 일본 순시선과 50여 차례에 걸쳐 총격전도 벌였다. 그는 나무를 이용해 대포 모양의 가짜 대포를 설치한 일화도 소개했다.
1956년 12월까지 3년8개월간 독도에서 활동한 정씨는 이듬해 경찰경비대가 창설되면서 독도 경비를 중단했다. 그러나 수비대원 중 8명이 그대로 경찰로 발령나면서 20여년 이상을 울릉도와 독도에서 근무하게 됐다. 정씨 역시 1년2개월가량을 경찰로 재직했다.
“당시 젊은 사람들이 무장하고 독도로 들어갈 때 몇몇 주민들은 ‘미쳤다’고 놀려대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의용 대원들은 오로지 우리 영토를 지켜야 한다는 애국심에 불타 목숨 걱정은 염두에도 없었죠.” 그는 아직도 의용수비대를 세웠던 초창기를 생생히 기억했다. 현재 이들 대원 중 홍순칠 대장 등 22명은 작고하고 10명만 생존해 있다. 그를 포함해 울릉도에 3명이 거주한다.
“독도는 민족 정기가 서린 역사 그 자체입니다. 전 국민이 힘을 모아 독도를 자손만대까지 영원히 지켜야 합니다.” 정씨는 주먹을 불끈 쥐며 이렇게 힘주어 말했다.
울릉도=김덕용 기자 kim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