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정치권에서 잘나갔던 A 전 의원이 정치를 접은 건 여자문제가 결정적이었다. 그의 은밀한 사생활이 설(說)로 나돌기 시작한 건 바로 그의 주변이었다. 그의 비서가 소문을 내면서 A 전 의원은 조용히 정치권을 떠났다.

정치인들의 수행비서와 운전기사는 정치인의 수족이나 다름없다. 이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영감(모시는 의원)’과 함께한다. ‘영감’의 일거수일투족을 가족보다 더 잘 알고 있다는 말은 과언이 아니다. 좋든 싫든 사생활을 꿰고 있다. 해당 정치인의 약점 또한 누구보다 잘 아는 게 그들이다. “수행비서와 운전기사는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써야 한다”는 얘기가 정치인들 사이에 불문율이 돼온 건 그래서다.

배지 퇴출 절반은 내부 배신탓

이번에 새누리당 공천헌금 파동의 진원지도 믿었던(?) 의원의 비서였다. 현영희 의원(비례대표)을 도왔던 비서가 선거 후 보상(4급 상당 보좌관)이 이뤄지지 않자 현 의원을 음해했다는 게 현 의원의 주장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공천헌금 파동의 출발점은 두 사람의 갈등이었던 셈이다.

과거 선거법 위반으로 배지를 잃은 의원 상당수도 주변의 배신이 결정적이었다. 선거캠프의 돈을 만졌던 인사가 사정당국에 찌르니 속수무책이었다. 불법 선거운동을 옆에서 본 측근이 제발로 경찰서를 찾아가니 모든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의원들은 빠져 나갈 구멍이 없다. 조용히 금배지를 떼는 수밖에는.

그래서 나온 게 정치권의 ‘6개월 룰’이다. 선거가 끝난 뒤 6개월간은 선거를 도왔던 측근들과 절대 부딪쳐선 안 된다는 것이다. ‘내부의 적’을 경계하라는 얘기다. 6개월은 공직선거법 위반사범에 대한 공소시효 기간이다. 그렇지 않아도 선거와 관련해선 구린 데가 많은 터다.

밖에 알려져선 안될 비밀을 속속들이 아는 게 측근들이다. 의원들이 6개월간 보좌진과의 허니문 기간을 갖는 건 이런 연유에서다. 현 의원은 적어도 이 ‘6개월 룰’의 덫에 걸린 셈이다. 뒤가 구려 측근들을 관리해야 하는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기도 하다.

선거후 6개월간 의원들 몸조심

비단 현 의원뿐이랴. 지난 ‘4·11 총선’의 공소시효 만료일은 10월10일이다. 아직 50여일이 남아 있다. 최근 돌아가는 정황상 공천비리 파문은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새누리당 주변에선 벌써 제2, 제3의 공천헌금설이 나돌고 있다.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에 대한 거액의 후원금 제공설도 흘러 나온다. 사실 친박계가 당을 장악한 뒤 공천 관련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박근혜 후보가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개혁을 외치는 동안 주변에선 ‘차떼기의 추억’이 여전했다는 얘기가 공공연했다.

권력 주변의 부패는 소리없이 다가온다. 권력자의 의지와는 무관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역대 가장 도덕적인 정권’이라고 자부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측근들이 줄줄이 구속되면서 할 말을 잃었다.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은 아들까지 구속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말로를 맞았다.

박근혜 후보 주변에선 벌써부터 권력다툼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친박이라고 해도 모두 똑같은 친박이 아니다. 박 후보와의 친소관계에 따라 신주류와 구주류로 나뉜 지 오래다. 박 후보가 주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박 후보도 예외일 수 없다.

이재창 정치부장 leejc@hs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