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에 어린 아이가 실려온다.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응급실 당직의사는 수술을 할 수 있는 외과, 신경외과 의사들에게 급하게 전화를 돌린다. 그러나 연락이 되는 전문의들은 한 명도 없다. 최근 한 의학드라마에 나온 장면이다.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 병원 상당수가 응급실에 의사와 간호사 법정 인원을 채우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13일 전국 452개 병원의 응급실 운영실태를 조사한 결과 의사와 간호사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병원은 전체의 40%가 넘는 185개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대형 병원도 조건 못 맞춰

특히 인력, 시설, 장비 등의 법적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병원은 188개에 달했다. 그중 80% 이상이 중소형 병원들이었다. 이 중 3개 병원을 빼고는 모두 시설, 장비 등은 제대로 갖췄지만 의사, 간호사 등이 부족해 조건 미달 병원으로 지정됐다.

대형 병원 응급실에도 의사가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20개 이상의 병상과 처치실 등을 갖춘 114개 지역응급의료센터 중에도 백제병원(충남), 대구보훈병원, 부안성모병원, 순천중앙병원, 대우병원(경남) 등 16개 병원이 의사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병원은 현행법상 2명 이상의 응급실 전담 전문의사를 포함, 4명 이상의 전담의사를 두도록 돼 있다. 중소형 병원은 더 심각한 수준이다. 수술을 하지 못하더라도 경미한 환자나 일반환자 등을 돌봐야 하는 지역응급 의료기관 313개 가운데 제대로 의료인력을 갖춘 병원은 전체의 절반을 밑도는 146개에 불과했다.

반면 시설과 설비는 상대적으로 잘 갖추고 있었다. 병상 등 시설과 CT촬영기 등 장비를 제대로 갖춘 병원의 비율은 각각 전체의 94%에 이르렀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병상 수와 CT촬영기 등이 가장 많은 국가 중 하나라는 게 복지부의 설명이다.


◆지방대 병원 서비스 질 낮아

서비스 등 의료의 질 평가에서는 지방대 병원이 전체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았다. 권역응급의료센터에 속하는 대형병원 16개 중 부산대병원, 충북대병원, 전북대병원이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또 114개 지역응급의료센터 중 건국대병원, 계명대동산병원, 인제대일산백병원, 화순전남대병원 등이 서비스 질 하위 20%에 포함됐다. 삼육서울병원, 서울보훈병원, 서울의료원 등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높은 점수를 받은 병원은 가톨릭대의정부성모병원, 서울대병원, 길병원(인천), 강동성심병원 등이었다.

이번 평가결과에서 서비스 평가 하위 20%에 들어간 병원과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167개 병원, 현황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24개 병원은 응급의료 관련 정부 지원금을 받지 못한다.

◆응급실 사용료 올린다

복지부는 응급실 이용환자 급증과 인력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응급실 이용료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양병국 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의료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응급의료비를 올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응급실에 전문인력을 두고 싶어도 비용부담 때문에 두지 못하는 병원이 많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또 지난해 사상 처음 응급실 이용자가 1000만명이 넘어선 것도 응급실 이용료를 높이려는 이유다. 복지부는 응급실을 찾은 1000만명 중 300만명 정도는 응급실을 찾지 않아도 되는 환자였다고 설명했다. 응급실 이용료 인상을 통해 문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하반기 중 구체적인 응급실 이용료 인상계획을 확정해 발표할 계획이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