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담은 ‘하도급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하도급법)’ 개정안이 지난 5월30일 진영 새누리당 의원 안을 시작으로 지난달까지 4건이 발의됐다. 새누리당 내 경제민주화실천모임도 집단 소송과 징벌적 손해배상제(징벌배상제)의 적용 범위를 공정거래법 전체로 확대하는 개정안을 준비 중이며 민주통합당의 유력 대선 주자 중 한 사람인 손학규 상임고문도 지난 9일 정책발표회를 갖고 징벌배상제를 공정거래법 위반행위 전체로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징벌배상제는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도입 논의가 시작됐다. 그러나 불문법 국가인 미국에서만 본격 시행돼온 제도라는 점, 그리고 법률로 부당이득을 정당화함으로써 소송만능주의를 부추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반대 의견이 많아 입법이 늦춰져왔다. 징벌배상금은 원인없이 취득한 이득으로, 민법상 부당이득으로 봐야 한다.

이 같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이명박 정부는 징벌배상제를 국내에 도입했다. ‘중소기업 보호’라는 명분을 앞세워 하도급법을 개정, 징벌배상제를 규정했다. 이 법은 지난해 6월30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원청업체가 과실 없음 입증…‘과실책임 원칙’ 중대한 위배

하도급법에 따르면 원사업자(일반적으로 대기업)가 수급사업자(일반적으로 중소기업)의 기술을 탈취해 이를 이용해 이익을 본 경우, 발생한 이익의 3배까지 수급사업자에게 배상해야 한다. 불문법계 국가, 그중에서도 미국에서만 본격 시행되고 있는 징벌배상제를 성문법계를 택한 나라 중 한국이 최초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여전히 징벌배상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또 시행상의 법리적 문제점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우선, 피해자가 실제 입은 손해보다 3배나 많은 배상을 받을 수 있어 소송이 남발될 우려가 지적된다. 전통적으로 법리상 단죄의 대상이었던 부당이득이 하도급법 개정으로 정당화되는 법리적 ‘충돌’도 발생했다. 더욱이 입법과정에서 법리보다는 ‘중소기업 보호’라는 정치적 목적이 우선시되면서 사법(私法)의 대원칙인 과실책임의 법리마저 변형됐다.

전통적인 과실책임 법리는 배상을 받고자 하는 자가 상대방의 고의나 과실을 입증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현행 하도급법은 거꾸로 배상을 해야 할 원사업자가 자신에게 과실이 없었음을 입증해야 한다. 따라서 원사업자가 경쟁입찰 방식으로 수급사업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수급사업자의 기술을 설령 원사업자가 기존에 갖고 있다 할지라도 특허등록을 해놓고 있지 않는 한 배상책임을 져야 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또 징벌배상제는 악의적 목적을 갖고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사업자를 대상으로 재발 방지 차원에서 가하는 형사적 민사제재임에도 불구하고, 하도급법은 원사업자에게 경과실만 있어도 손해액의 3배를 배상책임지도록 하고 있다. 이 같은 현행 제도가 정상적인 하도급거래를 위해 순기능을 하려면 최소한 징벌배상제의 기본원칙에는 부합하도록 재정비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럼에도 재정비에 대한 논의는 생략한 채 무조건 현행 제도를 공정거래법 전반에 걸쳐 적용하겠다는 정치권의 공약은 어느 모로 보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민주당 등은 배상액을 10배까지 증액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하도급거래의 본질적인 문제를 재검토하고 이에 대한 해법을 모색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미 도입된 기술탈취 이용에 대한 징벌배상제의 취지는 세 가지로 알려지고 있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대기업이 그 지위를 이용해 중소기업인 수급사업자에게 가하는 불공정한 거래관행을 해소하고자 하는 게 첫 번째다. 또 기술을 확보한 중소 규모의 수급사업자가 대기업과 하도급거래를 하면서 기술을 탈취당해 창업에 실패할 위험성이 있는 것을 고려해 중소기업의 창업리스크를 완화하고 혁신형 중소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취지도 있다. 이와 함께 강소기업의 저변을 확대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이 가능하도록 환경을 조성하고자 하는 것도 입법 취지 중 하나다.

불문법 국가인 美 판례 따른 것…성문법 국가 중 채택사례 없어

즉 중소기업들이 우월적 지위에 있는 대기업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하는 부분을 개선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는 환경을 조성하고 이를 통해 대한민국의 국가경쟁력을 제고하는 데 근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시점에서 완벽한 해법안을 찾기란 어렵다. 따라서 가장 문제되는 점들 가운데 우선 순위를 정해 기본원칙을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 실손해배상을 원칙으로 하는 성문법계의 특성상 부당이득을 정당화하는 현행 법제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실손해배상원칙도 유지하면서 중소기업의 기술보호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성문법계형 징벌배상제의 창안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실손해액을 초과하는 징벌배상액은 국고로 귀속시키는 방안이 그것이다.

우리나라는 과징금, 벌금 등과 같은 형사벌적 제재규정을 두고 있다. 징벌배상제도 형사벌적 민사책임제도라는 점에서 실손해액을 초과하는 배상액은 벌금의 성격을 갖는다고 본다. 따라서 현행 하도급법을 개정해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의 기술을 탈취해 이익을 본 경우에는 그 이익액만큼 수급사업자에게 귀속되게 하고, 초과하는 금액은 국고로 귀속되도록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둘째, 징벌배상제의 본래 취지를 고려해 악의적인 불법행위에 대해서만 징벌배상제가 적용될 수 있도록 현행 하도급법을 개정해야 한다. 원사업자가 고의 또는 중과실로 수급사업자의 기술을 탈취해 이익을 본 경우에 한해 징벌배상제가 적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 두 가지가 전제되면 최소한 현행 징벌배상제가 초래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은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이렇게 근본적 문제점을 풀어낸 이후에 정치권의 주장대로 징벌배상제를 공정거래법 전반에 걸쳐 적용하는 방안을 모색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정치적 목적보다는 법리에 충실한 입법안을 모색하는 정치권의 법치주의 정신을 기대해 본다.

전삼현 < 숭실대 법학과 교수 >

△숭실대 법학과 △독일 프랑크푸르트대 법학박사 △녹산학술장학재단 상임이사 △한국법학교수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