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가로수길이 ‘제조·직매형 의류(SPA·패스트패션)’ 브랜드의 격전지로 부상하고 있다. 올 상반기에 스페인 자라와 제일모직 에잇세컨즈, 국내 패션업체 에이다임의 스파이시칼라가 매장을 연 데 이어 스웨덴 H&M과 미국 홀리스터가 최근 건물 임대계약을 맺었다.

AK몰이 인수한 멀티숍 ‘쿤’과 신세계인터내셔날(SI)의 ‘디젤’ 플래그십스토어(인기 있는 특정 상품을 중심으로 브랜드의 성격과 이미지를 극대화한 매장)도 매장을 열기 위해 공사 중이다. 패션업체들이 ‘가로수길 매장 선점’을 위해 주력하고 있다.

글로벌 SPA가 가로수길 매장에 공을 들인 것은 작년 하반기부터다. 원래 가로수길은 개인 사업자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옷가게와 음식점, 주점 등이 자리잡은 한적한 거리였다. 1~2년 전부터 10~20대는 물론 30대 직장인 등 유동인구가 늘어나자 작년 6월 ‘포에버21’이 지하 1층부터 지상 5층까지 총 6개층의 대규모 매장을 낸 것이 계기였다. 스페인 패션그룹 인디텍스의 마시모두띠가 지난해 11월 두 번째로 자리를 잡았고, 인디텍스의 대표 브랜드인 ‘자라’도 지난 2월 초 매장을 냈다.

마시모두띠 맞은편에 제일모직의 SPA 브랜드 에잇세컨즈가 2월 말 대대적인 론칭행사에 나서면서 가로수길의 SPA 경쟁이 본격화됐다.

자라의 경쟁 브랜드인 스웨덴 H&M도 최근 가로수길의 건물주와 임차계약을 체결, 내년 봄에 매장을 열기로 했다.

정해진 H&M 매니저는 “최근 오픈한 신세계백화점 부산 센텀시티점에 이어 하반기엔 여의도 IFC몰과 인천 스퀘어원, 부산 서면 2호점을 열고 내년 초에 가로수길점과 홍대점, 울산 up스퀘어점까지 매장을 확대할 계획”이라며 “건물주와의 계약 문제로 가로수길점의 위치는 아직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TNGTW’와 ‘에이랜드’ 사이의 커피숍 탐앤탐스 건물이나 그 맞은편 중식당 ‘콰이19’ 건물 등을 H&M 매장 후보지로 보고 있다.

가로수길이 SPA 브랜드의 격전지로 급부상하면서 기존 패션 브랜드를 운영하던 대기업들도 멀티숍, 플래그십스토어 등 다양한 형태의 매장을 속속 만들고 있다. LG패션은 그동안 가로수길에서 운영하던 자체 멀티숍 ‘라움’과 자체 패션 브랜드 ‘TNGTW’, 수입·판매하는 미국 캐주얼 브랜드 질스튜어트 플래그십스토어 등과 가까운 건물을 최근 임차계약했다. 아직 어떤 브랜드를 들여놓을지 결정하진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LG패션의 자체 멀티숍 매장을 론칭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SI 역시 동대문 패션 브랜드와 자체 제작한 중·저가 브랜드를 판매하는 멀티숍 ‘30데이즈마켓’의 컨벤션 매장(바이어들을 대상으로 제품 컨셉트를 보여주기 위해 임시로 운영하는 매장)으로 사용하던 건물을 최근 매입했다. SI가 수입·판매하는 청바지 브랜드 ‘디젤’의 플래그십스토어도 자라와 포에버21 매장 근처에서 공사를 진행 중이다.

김영 SI 홍보팀 과장은 “가로수길이 패션 브랜드의 격전지로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에 젊은 층에 인기 있는 디젤 플래그십스토어를 열기로 한 것”이라며 “30데이즈마켓 컨벤션 매장으로 쓰던 건물도 자체 브랜드를 들여놓기 위해 일단 매입했지만 어떤 매장으로 운영할지 결정하지 못해 현재 매장 문을 닫은 상태”라고 말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