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은행이 사회적 비난 여론을 의식해 각종 수수료와 대출 최고 금리를 잇따라 낮추고 있다. 양도성 예금증서(CD) 금리 담합 의혹과 대출서류 조작 등으로 은행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극에 달하자 대응책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경기 침체로 생활고를 겪는 서민들은 혜택을 볼 수 있지만 순이자마진(NIM) 등 각종 수익성 지표가 나빠지고 있는 은행으로선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7일 국민은행은 3년 만기가 지난 기업 대출에 대해 중도상환 수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르면 13일부터 시행에 들어갈 계획이다. 가계 및 기업의 대출 최고 금리를 3%포인트씩 낮추겠다고 발표한 지 하루도 안돼 다시 추가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하나은행도 13일부터 가계대출 최고 금리를 종전 연 16%에서 14%로 2%포인트 인하한다고 이날 발표했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최근 ‘금융=탐욕’이라는 등식이 성립하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조직 내부에 팽배하다”며 “이런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계속해서 금융지원책을 마련하다 보니 매주 열리는 경영협의회 때마다 연간 은행 순이익이 100억원씩 날아가는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전문가들은 은행이 이처럼 ‘공공의 적’이 된 것은 가계대출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져 나오면서부터라고 설명한다. 실물경기 침체와 부동산 가격 하락 등으로 서민들은 이자도 제대로 못 갚고 있는 마당에 은행들은 예대마진으로 쉽게 돈을 벌고 있다는 인식이 퍼져 나갔다.

특히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달 19개 은행 및 증권사를 상대로 CD 금리 담합 여부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고, 금리 인하 시기에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활용해 21조원의 부당이익을 챙겼다는 감사원의 지적이 나오면서 은행에 대한 비난 여론이 더 높아졌다.

게다가 정치권에서도 김한길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대출금리와 관련한 은행 청문회를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김기준 민주당 의원은 아예 은행의 의사결정 과정에 근로자를 대표할 만한 사람들이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사회 분위기에 밀려 시중 주요 은행은 금리 결정구조에 대해 논리적인 설명을 하기보다는 서둘러 민심을 가라앉히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신한은행은 이날 가계대출 최고 금리를 연 17%에서 14%로, 기업대출 최고 금리를 연 15%에서 12%로 3%포인트씩 인하하기로 했다. 우리은행도 현재 연 17% 수준인 대출 최고 금리를 낮추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인하폭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한 대책들이 자칫 은행의 중장기적인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2분기 은행 평균 순이자마진은 2.13%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0.19%포인트 떨어졌다. 2011년 자기자본이익률(ROE)은 8.6%로 2007년(14.6%)에 비해 반토막난 상황이다. 은행주 투자자들도 걱정이 태산이다.

박병원 은행연합회장은 “은행이 수익이 나면 안 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알 낳는 닭을 잡아 고기를 나눠 먹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합리적인 수준의 수익이 보장돼야 전체 산업이 발전하고, 은행 주가가 오른다”고 말했다.

윤창현 금융연구원장은 “외환위기 이후 은행들에 동북아 금융 허브, 메가뱅크 설립 등 수익 추구를 제1 목표로 심어줘 놓고선 이제 와서 갑자기 공공성을 강조하는 등 금융정책이 일관성을 잃었다”며 “은행의 존재 이유를 공공성과 수익 추구 중 어느 지점에서 설정할 것인지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