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끌어올린 주역, 대기업 집단(재벌)은 결국 해체의 길로 떠밀려갈 것인가. 새누리당 내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이 ‘3탄’으로 예고한 ‘재벌의 가공의결권 제한’이 실체를 드러냈다. 예고편보다 훨씬 강도가 세고 포괄적이다. 삼성 현대자동차 등 간판 그룹의 지배구조 핵심인 순환출자 구조 와해를 겨냥하고 있어서다.

▶8월4일자 A1, 6면

경제민주화실천모임 대표인 남경필 새누리당 의원이 5일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경제민주화 3호 법안’의 골자는 ‘신규 순환출자 금지와 기존 출자분에 대한 의결권 제한’이다. 그룹 총수가 소수 지분으로 대기업 전체를 지배하는 관행을 뜯어고치겠다는 것이다.

남 의원은 “재벌 해체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고 했지만 이번에 발의한 법 개정안의 파장에 대한 재계와 경제계 해석은 전혀 다르다.

우선 기존 순환출자 해소에 대해 남 의원은 “순환출자의 마지막 단계를 끊겠다는 것”이라고 의미를 분명히 했다. A→B→C→D→A사 형태의 순환출자 구조에서 마지막 단계인 D사의 A사에 대한 의결권을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식회사에서 의결권 없는 주식은 배당 효과를 제외하면 사실상 휴지에 가깝다. 따라서 의결권 행사 제한은 기존 순환출자 무력화와 공중분해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는 게 재계의 우려다. 더욱이 순환출자는 동일 그룹 내에서 여러 갈래로 존재한다. 삼성만 해도 총 5개의 순환출자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신규 순환출자 금지에 따른 현실적 문제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이뤄지는 신규 출자를 통한 대주주 지분 확대, 신사업 진출을 위한 계열사끼리의 자금 조달과 사업 구조조정을 위한 계열사 간 지분 이동 등도 전면적으로 차질을 빚는다.

이번 개정안이 주식회사 제도의 기본원리, 법인의 법적 권한, 투자 자유 등을 통째로 부정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경련 관계자는 “가공의결권 제한은 타인의 가공자본을 활용해 성과를 극대화한다는 주식회사의 기본 취지를 모르거나 의도적으로 오해한 데서 비롯된 발상”이라며 “과거 합법적으로 이뤄졌던 투자를 이제 와서 규제하겠다고 하면 한국의 법적·정책적 신뢰가 곤두박질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재계의 우려에 대해 남 의원은 “엄살”이라며 “자꾸 할리우드 액션을 하면 퇴장당한다”고 으름장을 놨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