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서정시학’이 시 본연의 압축적이고 간결한 표현에 충실한 시인 세 명의 시집을 동시에 펴냈다. 윤후명(66)의 《쇠물닭의 책》, 문인수(67)의 《그립다는 말의 긴 팔》, 한영수(55)의 《케냐의 장미》다. 화자 내면에 치중하는 해체시로 2000년대 중반 시단에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미래파’에 대한 비판에서 나온 시집이다. 세 시인 모두 경제적인 언어를 통해 ‘적게 쓰면서도 많이 말하는’ 시를 쓰려 했다는 게 공통점이다.
‘서정시학’ 주간을 맡고 있는 최동호 고려대 국문과 교수는 “지난 10년간 우리 시가 너무 길어지면서 장황한 소통불능의 시가 돼버렸다”며 “짧지만 감동과 여운을 주는 서정시를 통해 시단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려 했다”고 말했다.
‘겨울 소나무/지금은 몰라도/나중에, 나중에는/사랑에 알려지리라 믿었다/아무리 숨었더라도/나중에, 나중에는/알려지고 마는 것/겨울 소나무/사랑 푸르름’(윤후명, ‘사랑 푸르름’ 전문)
윤 시인은 “일부 젊은 시인의 작품 경향 중 하나가 언어를 학대하는 것”이라고 했다. 시인 자신과 시를 끝까지 몰아가는 경향이 쓰는 사람까지 괴롭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또 불안한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는 설명이다. 소설을 쓰다가 20년 만에 시인으로 돌아온 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는 시에도 서사를 입힘으로써 시와 소설의 경계가 확연한 우리 문단만의 특징을 해소하려 시도했다”며 “언어를 해체하는 요즘의 시풍을 넘어서는 다른 방향의 모색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문인수 시인의 시집 《그립다는 말의 긴 팔》은 글자보다 여백이 많다. 3~5행으로 끝나는 짧은 시들이 많지만 독자들이 다시 곱씹어볼 수 있는 긴 여운을 남긴다.
‘제 몸 일으켜 떠나는 이별을 믿는지.//대숲에, 대숲에,/또 시퍼렇게 쓸어안으며 울부짖으며 무너지는 바람……//나, 못 간다.’(‘바람, 못 간다’ 전문)
“우리 시가 길어진 건 과거 정치·사회적인 상황을 짧은 분량으로는 표현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즘 일부 시들은 자기 내면에 대한 토로가 다소 장황한 측면이 있습니다.”
문 시인은 “시를 쓴 후에는 짧게 쓰고 많이 말했다 싶을 때가 훨씬 기뻤다”며 “현실에서도 말이 많으면 실언을 하게 되듯 시에서도 행간의 의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한영수 시인은 2010년 등단했고, 이번이 첫 번째 시집이다. 10여년간 중·고교 국어교사를 지내다 그만두고, 20년 동안 취미로 작품활동을 하다 문단에 나왔다.
그의 시 또한 현실의 리얼리즘에 발붙이고 있다. 그의 시에 담겨 있는 건 관념이 아닌 한낮 골목을 도는 생선 담은 1t 트럭이거나, ‘늦은 밤 꽝, 하고 닫히는 소리’의 현관문으로 존재하던 옆집 남자다. 문학평론가인 김종훈 상명대 교수는 그의 시를 “침묵에서 막 건져올린 듯하다”고 평했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