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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구하겠다"며 처자식 굶긴 아빠…딸이 도살장 달려간 사연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말(馬) 그림의 대가
로자 보뇌르(Rosa Bonheur)
로자 보뇌르(Rosa Bonheur)
급기야 아버지는 다른 광신도들과 함께 수도원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네 아이를 홀로 먹여 살리게 된 어머니의 얼굴은 점점 흙빛으로 변했습니다. 아버지는 가끔 집에 들를 때마다 말했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족이라는 제도를 없애야 해.”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딸을 껴안고 절망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훗날 딸은 회상했습니다. “아버지가 인류를 구원한다는 꿈속에 사는 동안, 어머니는 가난에 질식해 죽어가고 있었다.”
결국 어머니는 서른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원인은 과로와 영양실조. 돈이 없었던 가족은 어머니의 시신을 공동묘지, 그중에서도 연고가 없는 빈민들이 묻히는 구덩이에 묻어야 했습니다. 열한 살의 딸은 그 비참한 광경을 지켜보며 다짐했습니다. 나는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고, 남자에게 자신의 삶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겠다고 말입니다.
무능한 광신도 아버지
19세기 초, 프랑스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훌륭한 교육을 받은 아가씨가 있었습니다. 그 아가씨는 미술 과외 선생님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과외 선생님은 가난한 집안 출신에 글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는 문맹. 하지만 그의 잘생긴 얼굴과 예술적 감수성에 반한 아가씨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식을 올립니다. 로자의 부모님(아버지 레몽 보뇌르, 어머니 소피 마르키)은 그렇게 동화처럼 가정을 이뤘습니다.이듬해인 1822년,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로자가 프랑스 보르도에서 태어났습니다. 형편은 넉넉지 못했지만 집안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습니다. 아버지가 급진적 사회주의 종교인 ‘생시몽주의’에 광적으로 빠져들기 전까지는요.
급기야 아버지는 교주의 명령에 따라 가족을 버리고 다른 광신도들과 함께 수도원에 들어갑니다. 남겨진 네 아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어머니는 1833년 서른여섯의 나이로 숨을 거두고 맙니다. 이때 로자의 나이가 불과 열한 살. 장례 비용조차 없는 탓에 어머니의 시신은 다른 빈민들의 시신과 한 구덩이에 파묻혔고, 아버지는 돈이 없어 묘비도 세워주지 못했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로자는 가로등 불빛에 타 죽은 나방들을 종이 상자에 모은 뒤 잘 묻어줬습니다. 결혼이라는 불꽃에 뛰어들어 타죽은 어머니를 애도하는 의미였습니다.
“너는 재능이 있어. 여자라고 해서 포기하면 안 된다. 남자들보다 더 훌륭한 화가가 돼야 해.”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가 믿었던 종교의 양성평등 사상은 로자의 자립심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줬습니다. 다만 로자와 아버지에게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사이비종교가 약속하는 허황된 천국을 꿈꾼 몽상가. 하지만 로자는 아버지가 보지 않으려 했던 현실을 똑바로 바라볼 준비가 돼 있었습니다. ‘진짜 세상’을 포착하기 위해, 그녀는 붓을 들고 도살장에 뛰어들었습니다.
도살장의 해부학자
당시 여성에게 허락된 미술은 거실에서 우아하게 그릴 수 있는, 꽃이나 정물화 같은 ‘얌전한 그림’이었습니다. 하지만 로자는 역동적인 그림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건 동물 그림. 그녀는 생각했습니다. ‘제대로 그리려면 껍데기는 물론이고 그 안의 구조, 그러니까 해부학을 완벽하게 이해해야 해.’로자가 향한 19세기 파리 도살장은 여성이 들어간다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는 공간이었습니다. 사방에 피비린내와 오물 냄새가 진동하고, 거친 남성 노동자들의 고함과 욕설이 오가는 곳이었지요. 로자가 스케치북을 들고 나타나자 그녀에게는 조롱과 위협이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로자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습니다. 매일같이 도살장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소와 양의 근육, 뼈, 내장을 정밀하게 기록했지요. 피와 뼛조각이 튀는 현장에서 묵묵히 그림을 그리는 로자의 집념에 결국 인부들도 항복했습니다. 나중에는 인부들이 스케치하기 좋은 부위를 골라 먼저 보여주기까지 했습니다.
덕분에 로자는 말들을 사고파는 거친 마(馬) 시장에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말의 뒷다리 근육이 힘을 쓸 때 어떻게 뒤틀리는지, 숨을 몰아쉴 때 콧구멍이 어떻게 벌어지는지를 자세히 관찰했습니다. 수만 번의 스케치를 통해 쌓아 올린 ‘빅 데이터’ 덕분에 로자는 압도적인 정확성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말, 캔버스에 살아 숨 쉬다
1.5톤이 넘는 말들이 날뛰고, 거친 마부들의 채찍질과 욕설이 오가는 마시장의 진흙탕. 로자는 그 한가운데에서 짧은 머리를 하고 바지를 입은 채 스케치를 했습니다. 1850년대 초 파리의 말 시장을 담은 대작을 구상하던 그녀는 일주일에 두 번씩 이곳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군중 속에 섞여 날뛰는 말들, 이를 제어하려는 사람들의 사투를 철저히 관찰했지요.
결과는 ‘대박’이었습니다. 4만프랑, 지금 한국 돈으로 15억원에 가까운 거금에 작품이 팔려나갔습니다. 로자는 단숨에 세계 미술시장의 슈퍼스타가 됐습니다. 영국과 미국에서도 그녀의 이름은 화제가 됐고,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로자를 직접 성으로 초대해 경의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승승장구하던 로자는 퐁텐블로 숲 근처의 성(城)을 하나 사들였습니다. 그곳에 그녀는 거대한 아틀리에를 짓고 자신이 사랑하는 동물들을 모았습니다. 그녀는 암사자와 수사자를 직접 사서 길렀는데, 믿기 어려운 얘기지만 이 사자들은 로자의 앞에서 온순한 강아지처럼 굴었다고 전해집니다. 정원에는 원숭이, 가젤, 양, 말들도 자유롭게 뛰어놀았습니다. 로자는 이곳에서 동료, 조수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현실을 대하는 용기
형편없는 아버지, 여성이 바지를 입는 것조차 금기시했던 남성 위주 사회, 도살장에서 마주한 조롱과 경멸….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부조리를 오직 실력 하나로 이겨내고 전설이 된 로자는 1899년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눈앞의 현실이 거칠고 혼란스러울지라도, 결국 현실을 개척하는 자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법. 로자와 그녀의 그림 속 말처럼 현실을 바라보며 거침없이 도약하시기를. 머나먼 천국을 꿈꾸더라도, 주변의 소중한 것들까지 아끼며 돌아볼 수 있는 한 해 보내시길 바랍니다.
***4권 출간 준비를 위해 연재를 한 주 쉬어갑니다. 오는 3월 출간 예정입니다. 1월 17일에 다시 칼럼으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