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당국의 퇴직연금 편입 규정을 놓고 법제처와 금융위원회가 갈등을 빚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31일 퇴직연금 감독 규정을 변경 예고하며 퇴직연금 사업자가 자사상품으로 퇴직연금을 운용할 수 있는 비중을 50%(50% 룰)로 낮춘다고 발표했다. 작년 12월 이 비중을 70%로 정한 데 이어 7개월 만에 규제를 더 강화한 것이다. 현재 퇴직연금 가입자 중 상당수가 자신이 가입한 은행의 정기예금으로 돈을 굴리고 있는데, 이것이 ‘위험하다’고 판단해서다.

금융위 관계자는 “특정 금융사 상품으로 퇴직연금을 운용하면 금융사 파산 시 퇴직금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특정 금융사 상품의 최대 편입한도를 50%로 정하고 나머지는 다른 은행·증권·보험사 상품으로 운용하라는 것이다. 시중은행들은 “증권사와 보험사에 혜택을 주려는 조치”라고 반발하고 있지만 금융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당초 방침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법제처는 ‘70% 룰’이 적용되던 올 상반기 퇴직연금의 예금 투자 비중까지 지정하는 것은 월권이라는 취지의 공문을 금융위에 보냈다. “가입자가 어떤 상품으로 돈을 굴릴지 선택할 자유를 제약할 근거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법제처는 또 금융위 감독 규정이 상위법인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근퇴법)과 시행령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근퇴법 시행령 26조는 ‘투자위험이 큰 자산별로 금융위가 투자한도를 정해 고시할 수 있다’고 했다. 법제처는 “안전자산인 은행 예·적금은 ‘투자위험이 큰 자산’이 아니므로 시행령의 위임 범위를 넘어선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법제처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50% 룰을 그대로 도입할 예정이다. 금융위는 법제처에 “은행의 예·적금 등 원리금보장상품이 그 자체로는 위험자산이 아니지만 집중적으로 투자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며 수용할 수 없다는 내용의 답변서를 보냈다. 새 상품 편입 규정은 내년 2분기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상은/안대규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