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자동차 부품회사인 깁스코리아는 지난해 말 한국에서 경영을 접기로 하고 매각을 결정했다. 이 땅에서 공장을 경영한 지 10년 만이었다. 계속되는 적자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적자기업 깁스를 인수하겠다는 국내 기업이 나와 회사 측 입장에선 한숨을 돌린 상태였다. 굴지의 섬유제조업체인 K사가 경영다각화 차원에서 인수자로 나선 것. K사의 인수가 현실화되면 당장 직원들의 고용이 보장되고 깁스의 경영정상화도 기대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깁스노조(금속노조 만도지부 깁스지회)가 K사의 인수를 반대했다. K사가 투기자본이라는 이유에서다. 깁스노조는 K사의 인수에 반대하며 금속노조와 함께 공장 점거 농성을 벌였다. 그러면서 같은 노조(금속노조 만도지부)소속 사업장인 만도에 매각할 것을 요구했다. 만도와 깁스 노조는 특이하게도 2사1노조체제다. 만도노조 역시 깁스를 인수할 것을 회사 측에 강력히 요구해왔다. 최근 만도가 40일 넘게 파업을 벌이고 있는 주 요인도 깁스의 인수문제 때문이다. 그러나 만도 측은 적자가 누적된 깁스를 인수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분명히 했다. K사 역시 노조의 반대가 지속되자 깁스 인수를 포기했다.

“인수해달라” 매달릴 판에

깁스는 노조의 반대에 밀려 마땅한 매각처를 찾지 못하자 올해 초 공장문을 닫은 데 이어 지난 5월 파산해버렸다. 깁스가 파산한 이후에도 만도노조는 회사 측에 깁스 인수를 계속 주문하고 있다. 깁스와 만도노조의 황당한 주장으로 인해 깁스 직원 150여명은 실직상태에 처해 있다. 노조는 K사에 달려가 “인수해달라”고 애원해도 시원찮은 판이다.

파업 중인 만도 근로자들의 평균 연봉은 9000만원을 넘는다. 이런 노조가 권력을 휘두르며 깁스의 경영권에까지 개입, 멀쩡한 일자리를 잃게 만든 셈이다. 전 세계에 이런 어처구니 없는 노조가 또 있을까. 파산한 회사를 구해 직원들 일자리도 유지하고 경영정상화도 꾀하겠다고 나선 회사를 문전박대하는 노조 말이다.

170개 일자리 날린 노조도

노조가 권력을 휘두르다 회사가 없어져 일자리를 잃은 사례는 많다. 충남 천안에 있던 프랑스 자본의 발레오공조코리아도 대립적인 노사관계로 회사가 철수하는 바람에 일자리 170여개가 허공으로 사라졌다. 이 회사는 노조의 끊임없는 투쟁에 경영이 계속 악화되자 2009년 한국에서의 철수를 결정했다.

회사 측은 경영 정상화를 위해 원가절감, 라인 재배치, 희망퇴직 등의 회생방안을 제시했지만 노조가 계속 반대하는 바람에 아예 공장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노조는 근로조건 개선과 상관없는 정치적 이슈를 놓고 금속노조와 연대파업을 벌이기 일쑤였고, 라인을 중단해 큰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결국 발레오는 더 이상 한국에서의 경영을 단념하고 프랑스로 철수했다.

노조의 투쟁만능주의로 900개 가까운 일자리를 날려 버릴 뻔하다가 회사 측의 버티기로 간신히 회생에 성공한 케이스도 있다. 경주 발레오전장이다. 청소원 경비원 식당아줌마 등의 평균 연봉이 7000만원을 넘었던 이 회사는 강성 노조의 상습적 파업에 적자가 지속되자 2010년 초 철수를 검토했다.

그러나 다행히 막무가내식 투쟁에 염증을 느낀 노조원들이 민주노총을 탈퇴한 데 이어 상생의 길을 택하는 바람에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철없고 개념없는 노동투사들의 ‘일자리 걷어차기’를 막아 실직자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진짜 ‘희망버스’를 운행할 정치인 연예인 노동투사들은 이 땅에 없는 건가.

윤기설 한경좋은일터연구소장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