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옵션 과잉의 시대…'뺄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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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 기자의 car&talk]
헤드업 디스플레이 기능 등 단점 불구 비용부담 만만찮아
헤드업 디스플레이 기능 등 단점 불구 비용부담 만만찮아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몇 초나 흘렀을까. 차에서 ‘삐~삐~’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또 시작이다. 조수석에 놓인 가방 때문이다. 시트에 부착된 센서가 묵직한 가방을 사람으로 인식한 탓이다. 경고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커져 운전에 집중을 할 수 없을 정도다. 어쩔 수 없이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거나 벨트를 꺼내 끼운다. 안전벨트의 중요성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사람과 가방을 구분할 줄 모르는 센서는 기자에겐 시끄러운 옵션일 뿐이다.
다양한 편의사양(옵션)들이 운전의 질과 안전을 향상시킨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자동차에 옵션이 하나하나 늘어나면서 온전히 운전에 집중해야 할 운전자들의 신경을 흐트러뜨리고 있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기자는 3년 전 차를 구매할 때 내비게이션 옵션을 선택하지 않았다. 다행이다. 때문에 따로 구입한 내비게이션으로 주행 중에도 DMB를 시청할 수 있다. 물론 운전대를 잡은 기자가 보는 것이 아니다. 함께 탄 사람들이 본다. 차량용 DMB란 본질적으로 운전자를 제외한 탑승자들을 위한 것이다. 운전자는 소리를 들어야지 잠시라도 화면을 봐선 안 된다. 시속 100㎞로 달리는 차는 단 1초 만에 28m를 주파한다. DMB 시청이 사고 위험을 높인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내비게이션이 장착된 모든 자동차는 주행 중에 화면이 꺼지도록 설정돼 있다. 애꿎은 탑승객들은 운전도 안 하면서 화면도 못 본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드는 건 기자 혼자뿐인가.
BMW부터 시작해 최근 기아차 K9까지 경쟁적으로 탑재하고 있는 헤드업 디스플레이. 이 기능에도 치명적 단점이 있다. 난시가 있는 기자의 지인은 “헤드업 디스플레이를 보려고 초점을 맞추면 차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난시가 있는 운전자에겐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오히려 운전을 방해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이런 옵션들이 공짜가 아니라는 것. 모두 ‘돈’이다. K9 3.8 라인업 중 옵션을 넣지 않은 ‘깡통차’와 가장 비싼 차의 가격 차이가 2300만원이나 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옵션이 훌륭하게 제 기능을 하는지도 의문이다. 지난해 포드의 해치백 ‘포커스’ 출시 행사 때 자동주차 시스템은 몇 번을 시도해도 먹통이었다. 시승 행사에서 담당자들을 쩔쩔매게 만들었던 이 기능을 일반 운전자들이 얼마나 잘 이용할 수 있을까.
옵션이 운전자의 안전을 보장하기도 하지만 반드시 그렇다고 말할 수도 없다. 자동차 급발진 사고도 많은 전장부품이 차량에 장착되면서 오작동을 일으킨 것이라는 주장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자동차 전장화가 진행되면서 부품 수가 2만개에서 3만~4만개까지 늘어나며 전자제어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한 자동차 전문가는 이를 ‘전장화가 불러온 재앙’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각국 정부도 이런 부작용을 인식하고 규제에 나섰다. 미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지난 2월 ‘운전자의 눈과 손을 2초 이상 사용하게 만드는 장치를 부착하지 말도록’ 자동차 회사에 요청했다. 여기에는 내비게이션도 포함돼 있다. 국내에서도 앞으로 운전 중에 DMB를 시청하다 적발되면 벌금을 물도록 법령이 개정될 예정이다. 자동차 급발진에 대한 국토해양부의 조사도 진행 중이며 곧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차란 모름지기 옵션이 다양하고 화려할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소비자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그런 면에 올해 도요타 ‘86’과 현대차 ‘벨로스터 터보’ 등 운전의 재미에 방점을 찍은 차들이 등장하면서 깡통차, 즉 수동기어 모델이 다시 인기를 얻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수동기어가 장착된 차량이 급발진 사고가 났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자동차 회사들의 안전과 관련된 옵션을 다른 옵션과 묶어서 파는 관행도 사라져야 한다. 특히 사이드 커튼 에어백을 다른 옵션하고 묶어선 안 된다.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원치 않는 옵션까지 비용을 지불하면서 사도록 하는 건 맞지 않다.
‘깡통차’가 아닌 ‘오리지널’ 모델로 불러야 한다. 편의사양은 말 그대로 ‘옵션’. 선택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것이다. 옵션 과잉의 시대. 뺄셈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