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베이징올림픽에서 4초를 남겨두고 금메달을 놓친 남현희(31·사진)가 2012런던올림픽에서는 1초를 남겨두고 역전을 허용했다. 역전패를 안긴 선수는 두 차례 모두 ‘숙적’ 발렌티나 베잘리(38·이탈리아)였다.

남현희는 2008년 여자 플뢰레 개인전 결승 3세트에서 1분을 남겨두고 5-4로 앞섰으나 종료 30여초를 남겨두고 베잘리에게 동점을 내준 뒤 종료 4초 전, 베잘리의 찌르기를 막아내지 못해 5-6으로 역전패했다. 값진 은메달을 획득했으나 워낙 아깝게 금메달을 놓친 터라 남현희는 4년 동안 칼을 갈며 ‘금빛 찌르기’를 준비했다.

남현희와 베잘리의 얄궂은 운명은 이번에도 그대로 재현됐다. 남현희는 29일(한국시간) 영국 런던의 ‘엑셀 런던 사우스 아레나1’에서 열린 펜싱 여자 플뢰레 3, 4위전에서 베잘리와 만났다. 남현희는 3세트에서 12-8까지 앞서나갔으나 22초를 남겨두고 베잘리에게 연달아 투슈(유효타)를 허용하며 밀리더니 종료 1초를 남기고 12-12 동점을 내주고 말았다. 연장전에서 동시에 찔러 들어간 공격 중 남현희의 공격이 유효타로 인정받지 못하면서 동메달은 베잘리의 몫으로 돌아갔다. 베잘리는 눈물을 흘리며 승리의 감격을 즐겼으나 남현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굳은 표정으로 숙소로 돌아갔다.

세계 랭킹 2위 남현희는 2006년 이후 랭킹 1위 베잘리와의 대결에서 1승9패로 참담한 열세를 기록했다. 베잘리는 20년 가까이 펜싱 여자 플뢰레를 지배해 온 절대 강자다. 1996년 애틀랜타대회에서 처음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것을 시작으로 2008년까지 3개 대회 연속 개인전 금메달을 휩쓸었다. 1996년과 2000년 시드니올림픽 단체전도 우승해 총 5개의 금메달을 수확했다.

남현희는 앞서 열린 준결승에서 이탈리아의 강호 엘리사 디 프란시스카(30·이탈리아)에게 3세트 초반 9-5까지 달아나 결승 진출을 눈앞에 뒀으나 막판 공세에 밀려 10-10 동점을 내주고 연장전에서 졌다. 프란시스카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