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내 유산은 - 장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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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내 유산은
장석남
내 유산으로는
징검다리 같은 것으로 하고 싶어
장마 큰물이 덮었다가 이내 지쳐서는 다시 내보여주는,
은근히 세운 무릎 상부같이 드러나는
검은 징검돌 같은 걸로 하고 싶어
지금은,
불어난 물길을 먹먹히 바라보듯
섭섭함의 시간이지만
내 유산으로는 징검다리 같은 것으로 하고 싶어
꽃처럼 옮겨가는 목숨들의
발 밑의 묵묵한 목숨
과도한 성냄이나 기쁨이 마셨더라도
이내 일고여덟 형제들 새까만 정수리처럼 솟아나와
모두들 건네주고 건네주는
징검돌의 은은한 부동(不動)
나의 유산은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앉아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길 건너 교보생명 광화문글판의 시 석 줄과 징검다리 그림. 험한 세상 다리처럼 너와 나를 이어주고 꽃과 정수리를 이어주며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저 징검돌. ‘장마 큰물’에 잠겼다가도 곧 일어나 ‘불어난 물길을 먹먹히’ 바라보며 끊어진 길을 다시 잇는 부동(不動)의 자세. 저 한 몸 눕혀 ‘일고여덟 형제들’까지 온누리 사람들 다 ‘건네주고 건네주는’ 영속의 유산.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맨무릎으로 ‘꽃처럼 옮겨가는 목숨들의 발밑’을 받치며, 천년 뒤에 찾아올 어린 얼굴까지 환하게 밝히는 저 묵묵한 아름다움. 새 시집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에서 이 시를 발견하고는 한참동안 무릎자세로 앉아 생각에 잠겼더랬습니다.
고두현 문화부장·시인 kdh@hankyung.com
장석남
내 유산으로는
징검다리 같은 것으로 하고 싶어
장마 큰물이 덮었다가 이내 지쳐서는 다시 내보여주는,
은근히 세운 무릎 상부같이 드러나는
검은 징검돌 같은 걸로 하고 싶어
지금은,
불어난 물길을 먹먹히 바라보듯
섭섭함의 시간이지만
내 유산으로는 징검다리 같은 것으로 하고 싶어
꽃처럼 옮겨가는 목숨들의
발 밑의 묵묵한 목숨
과도한 성냄이나 기쁨이 마셨더라도
이내 일고여덟 형제들 새까만 정수리처럼 솟아나와
모두들 건네주고 건네주는
징검돌의 은은한 부동(不動)
나의 유산은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앉아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길 건너 교보생명 광화문글판의 시 석 줄과 징검다리 그림. 험한 세상 다리처럼 너와 나를 이어주고 꽃과 정수리를 이어주며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저 징검돌. ‘장마 큰물’에 잠겼다가도 곧 일어나 ‘불어난 물길을 먹먹히’ 바라보며 끊어진 길을 다시 잇는 부동(不動)의 자세. 저 한 몸 눕혀 ‘일고여덟 형제들’까지 온누리 사람들 다 ‘건네주고 건네주는’ 영속의 유산.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맨무릎으로 ‘꽃처럼 옮겨가는 목숨들의 발밑’을 받치며, 천년 뒤에 찾아올 어린 얼굴까지 환하게 밝히는 저 묵묵한 아름다움. 새 시집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에서 이 시를 발견하고는 한참동안 무릎자세로 앉아 생각에 잠겼더랬습니다.
고두현 문화부장·시인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