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최근 혁신형 제약기업 43곳을 선정해 발표했다. 국내 제약사 36곳을 비롯해 바이오벤처 6곳, 글로벌 제약사 국내법인 1곳 등이다. 정부가 혁신형 제약사를 선정한 이유는 간단하다. 내수 시장을 넘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시장 규모를 넓히라는 주문이다. 글로벌 경쟁력의 핵심은 신약 연구·개발(R&D) 능력에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혁신형 제약사 43곳 가운데 신약 개발 경험이 있는 기업은 고작 12곳에 불과하다. 대다수 국내 제약사는 수십년간 합성신약의 제네릭(복제약) 개발에 몰두해왔다. 제약협회에 따르면 신약의 평균 연구 기간은 11년, 평균 개발 비용도 233억원이나 된다. 수백개의 제약사가 난립한 국내 제약시장에서 어느 회사가 10년 이상 기다려 신약을 개발할 수 있을까. 그런 이유로 1897년 국내 첫 제약사인 동화약품 설립 이후 국내 제약산업 115년 역사상 국내 순수 신약은 19개에 불과하다.

현재 혁신형 제약사들은 너도나도 신약 개발에 ‘올인’하고 있지만, 힘들게 신약을 개발해도 제대로 된 약가를 책정받지 못할까 전전긍긍이다. 2010년 9월9일 15호 신약 허가를 받은 보령제약의 고혈압 치료제 ‘카나브’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3월 출시됐지만 올해 벌써 200억원 매출을 넘보고 있다. 세계 8번째 고혈압 신약으로, 개발기간 12년에 개발비만 500억원 넘게 들어갔다. 카나브는 출시 2년 만에 터키 알제리 카자흐스탄 등에 4580만달러 규모의 수출 협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정작 기대를 모았던 남미시장 공략은 정지 상태다. 멕시코에서 카나브의 약가를 터무니없이 낮춰 부르고 있어서다. 보령제약 측에서도 할 말이 없는 것이 국내에서 이미 낮은 약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더 내세울 수도 없다. 건보공단과 6차례 협상을 벌였지만 당초 희망가인 1정당 785원보다 낮은 670원으로 책정돼 해외 시장에서도 그 이상은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해외 수출 과정에서 국내 약가가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혁신 제약사 선정이 형식적인 포장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세계적인 다국적 제약사들도 시큰둥하긴 마찬가지다. 화이자 노바티스 GSK(글락소스미스클라인) 등 단 한 곳도 혁신제약사에 선정되지 못했다. 해외 제약사라는 이유 때문이다. 현재 서울을 세계 2위의 신약 임상도시로 끌어올린 다국적 제약사들이 도매급으로 소외된 것이다. 이들 제약사가 개발한 글로벌 신약도 지난 4월 정부의 약가 인하 조치로 가격 하락폭이 크다.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는 최근 성명서를 내고 “혁신적 신약을 개발하고 있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그간 한국에서 이뤄온 성과와 노력을 적절하게 평가받고 신약의 가치 또한 제대로 인정받는 풍토가 돼야 글로벌 경쟁력을 앞당길 수 있다”고 호소했다.

일본의 경우 2년마다 약가 인하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신약의 약가만큼은 제대로 인정해주고 있다. 일본 제약사들이 신약 개발에 매출 대비 20%라는 연구개발비를 수십년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다. 건강보험 재정의 안정성을 감안하더라도 우리도 신약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줘야 한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