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경제 민주화 논쟁이 갈수록 뜨겁다. 세계적인 경기불황이 계속되고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가 주요 이슈로 등장하자 대선정국에서 모든 정치권이 앞다퉈 경제 민주화를 들고 나와 실천 의지를 과시하고 있다. 경제 민주화는 1987년 개정된 헌법에 명문화(헌법 제119조)돼 지금까지 우리 경제에 알게 모르게 작용해온 이념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세계는 지금 경제 민주화보다 한 차원 높은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달 브라질 리우에서 개최된 유엔지속가능정상회의(리우+20)는 지구와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녹색경제(Green Economy)’로 가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인류가 직면한 기후변화, 에너지 고갈, 사회적 불평등, 그리고 이에 파생된 식량위기, 물부족, 금융불안, 실업증가, 양극화, 빈곤층 문제 등을 해결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며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지금의 경제시스템을 과감히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180개 유엔 회원국에서 100여명의 정상을 포함한 정부대표, 전문가, 시민단체 등 5만여명이 참석한 ‘리우+20’은 20년 전 같은 곳(브라질 리우)에서 열린 유엔환경개발회의의 합의 사항을 점검하고 인류가 가야 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1992년 유엔환경개발회의 기본 이념은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자연과의 조화’였다. 이때 처음으로 기후변화가 국제적인 이슈가 됐고 생물다양성 보전, 사막화 방지, 빈곤 퇴치 등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특히, 경제·사회·환경적 요소를 함께하는 지속가능발전은 이 회의를 계기로 인류의 시대적 사명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그 후 20년 동안 인류의 삶에 많은 긍정적 변화가 있었다. 글로벌 국내총생산(GDP)은 75%나 성장했고, 늘어난 인구를 감안하더라도 1인당 소득이 40% 증가했다. 세계 인구의 평균 수명도 3.5년 늘어났으며, 절대 빈곤층은 46%에서 27%로 감소했다. 또한 많은 인류의 생활환경이 크게 개선되고 삶의 질도 향상됐다. 생활환경과 도시환경 문제로 국한됐던 환경이슈는 전 지구적, 국가 정상급 수준의 논의 대상으로 격상됐다.

하지만 20년 전 리우선언문의 핵심이었던 경제·사회·환경적으로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은 지금도 요원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구 자원과 생태계는 과도한 경제활동과 늘어나는 인구로 더욱 심각하게 손상되고 있으며, 온실가스 감축노력에도 불구하고,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990년부터 2009년까지 38%나 증가했다. 소득 불평등과 빈부의 격차는 사회 안정망을 파괴하고 경제 위기로 치닫는 수준에 도달했다. 개발도상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중산층이 두터워졌음에도 불구하고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소득격차가 더욱 심화됐다. 특히 선진산업국 내에서 나타나는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번 ‘리우+20’에서 세계 정상들이 제시한 녹색경제는 지금까지 회자돼온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녹색기술과 녹색산업을 육성해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고 지속가능발전을 추구하자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리우에서 논의된 녹색경제는 지금의 경제시스템을 완전히 바꾸려는 시도다. 지금까지 경제활동과 시장가격에 적절히 고려되지 못한 사회적·환경적 비용을 보다 명확히 해서 지속가능한 사회와 환경을 담보하는 경제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아울러 새로운 경제시스템으로 사회 불평등과 빈부 격차를 해소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며 사회·경제적 약자를 돌보려는 의도다.

대선은 국가의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이다.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로 인류 문명이 대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 우리가 치러야 할 대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념적으로도 논쟁이 되고 실체도 불분명한 경제 민주화를 두고 지금 와서 원조·짝퉁 운운하며 경쟁하기보다 지속가능발전을 향한 역동적인 녹색경제 비전을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한다.

박석순 < 국립환경과학원장·이화여대 교수 ssp@ewh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