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포퓰리즘說에 휘말린 힉스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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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硏의 발견에 과학계 '들썩'
'확증안된 섣부른 발표' 주장도
한국 과학연구는 어디쯤 있을까
박성래 < 한국외대 명예교수·과학사 >
'확증안된 섣부른 발표' 주장도
한국 과학연구는 어디쯤 있을까
박성래 < 한국외대 명예교수·과학사 >
‘신(神)의 입자(God particle)’가 이달 초 전 세계를 흔들었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지난 4일 “그것으로 짐작되는 입자”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이 연구소의 강입자가속기(LHC)는 세계 최강이다. 한국의 방사광가속기(포항)는 비교도 할 수 없다. 1994년 세계 다섯 번째 방사광가속기로 등장한 포항가속기는 1500억원짜리로 165m의 선형가속기와 둘레 280m의 저장링으로 돼 있다. 전자를 가속 충돌시켜 나오는 방사광을 이용하는 실험장치다. 제네바의 가속기는 둘레가 27㎞, 크기만으로도 포항 가속기의 100배가 된다. 또 그것은 전자가 아니라 양성자를 빛의 속도까지 끌어올려 충돌시킨다.
포항가속기 정도도 물질 구조 연구에는 요긴하다. 하지만 ‘신의 입자’ 같은 연구는 어림도 없다. 순식간에 엄청난 에너지의 극한상황을 만들려면 훨씬 규모가 큰 장치가 필요하다.
1983년 만든 미국 페르미연구소의 둘레 6.28㎞짜리 테바트론은 몇 가지 소립자 발견의 공을 세웠지만, 유럽의 가속기에 비하면 역시 자그마하다. 결국 작년 가을 재정난으로 문을 닫았다.
그런 극한 실험 장치이기에 제네바의 가속기에는 ‘빅뱅 머신’이란 별명도 붙었다. 물질과 우주의 근본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깊어지면서 과학자들은 우주가 처음 시작된 것이 약 137억년 전이고, 그것은 소립자들이 춤추는 ‘빅뱅(Big Bang·대폭발)’ 상태였다고 추론했다.
제네바의 장치는 바로 그 상태를 재현해 보려는 노력이다. 이번 실험에 미국과 유럽에서 반대운동이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런 빅뱅이 블랙홀을 만들고, 그것이 세상을 파멸로 이끌 수도 있으리라는 공포 때문이었다.
태고 적부터 사람들은 물질을 구성하는 근본을 원자라 가정했다. 2세기 전 원자설은 정식으로 ‘과학’이 됐지만, 한 세기 만에 그것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된 핵과 그 둘레의 전자가 태양계 모양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곧 그 모델은 더 많은 작은 알갱이들, 즉 소립자(素粒子)의 집합으로 탈바꿈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수많은 소립자가 예언되고 발견됐으며, 걸핏하면 노벨상은 그 분야로 갔다. 198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미국의 레온 레더만(1922~)은 소립자 발견을 소개하는 책에 《빌어먹을 입자(God-damn particle)》(1993)란 제목을 붙였다.
편집자가 욕 부분(damn)을 빼고 책을 《신의 입자》로 펴내자, ‘힉스 입자’는 갑자기 ‘신의 입자’란 별명을 얻었다. 어쨌거나 올가을에는 영국 물리학자 피터 힉스(1929~)도 노벨상을 받을지 모른다. 한국의 원자탄 개발과 관련됐다는 오해를 받았던 재미 물리학자 이휘소 씨(벤자민 리·1935~1977)가 1972년 논문에서 ‘힉스 입자’란 말을 처음 사용했다는 말도 있다.
이번에 발표된 것이 정말 힉스 입자인지는 연말에나 가서야 판명된다고 한다. 확인되면 지난 반 세기 동안 입자물리학자들이 개발해 온 소립자의 족보(표준모형)는 인정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우주·물질의 신비가 완전히 밝혀지는 것은 아니다. 우주의 대부분은 여전히 알지 못하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로 돼 있고, 그를 탐색하는 일이 거대 가속기의 다음 과제라고 물리학자들은 말한다.
그나저나 엄청난 투자를 감당하지 못해 미국은 가속기 연구의 주도권을 유럽에 넘겨준 꼴이다. 확증되지도 않은 발견을 유럽입자물리연구소가 섣불리 발표한 것은 유럽 경제위기에서 연구소가 살아남기 위한 언론플레이라는 말도 떠돈다. 과학계에도 대중인기영합(포퓰리즘)은 대세가 될 수밖에 없다. 국제 경쟁에서 미국은 표 수가 많은 유럽을 당할 수 없고, 언론 조작이 예산 배정을 크게 좌우하는 세상이다.
우리는 이런 거대과학의 어디쯤에 서 있는가? 소립자, 우주, 해양, 국방 등 거대과학 분야는 더 많아지는데, 우리는 이런 국제경쟁과의 합종연횡(合縱連衡)에서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 그것이 심각한 문제다.
박성래 < 한국외대 명예교수·과학사 parkstar@unitel.co.kr >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이 연구소의 강입자가속기(LHC)는 세계 최강이다. 한국의 방사광가속기(포항)는 비교도 할 수 없다. 1994년 세계 다섯 번째 방사광가속기로 등장한 포항가속기는 1500억원짜리로 165m의 선형가속기와 둘레 280m의 저장링으로 돼 있다. 전자를 가속 충돌시켜 나오는 방사광을 이용하는 실험장치다. 제네바의 가속기는 둘레가 27㎞, 크기만으로도 포항 가속기의 100배가 된다. 또 그것은 전자가 아니라 양성자를 빛의 속도까지 끌어올려 충돌시킨다.
포항가속기 정도도 물질 구조 연구에는 요긴하다. 하지만 ‘신의 입자’ 같은 연구는 어림도 없다. 순식간에 엄청난 에너지의 극한상황을 만들려면 훨씬 규모가 큰 장치가 필요하다.
1983년 만든 미국 페르미연구소의 둘레 6.28㎞짜리 테바트론은 몇 가지 소립자 발견의 공을 세웠지만, 유럽의 가속기에 비하면 역시 자그마하다. 결국 작년 가을 재정난으로 문을 닫았다.
그런 극한 실험 장치이기에 제네바의 가속기에는 ‘빅뱅 머신’이란 별명도 붙었다. 물질과 우주의 근본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깊어지면서 과학자들은 우주가 처음 시작된 것이 약 137억년 전이고, 그것은 소립자들이 춤추는 ‘빅뱅(Big Bang·대폭발)’ 상태였다고 추론했다.
제네바의 장치는 바로 그 상태를 재현해 보려는 노력이다. 이번 실험에 미국과 유럽에서 반대운동이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런 빅뱅이 블랙홀을 만들고, 그것이 세상을 파멸로 이끌 수도 있으리라는 공포 때문이었다.
태고 적부터 사람들은 물질을 구성하는 근본을 원자라 가정했다. 2세기 전 원자설은 정식으로 ‘과학’이 됐지만, 한 세기 만에 그것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된 핵과 그 둘레의 전자가 태양계 모양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곧 그 모델은 더 많은 작은 알갱이들, 즉 소립자(素粒子)의 집합으로 탈바꿈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수많은 소립자가 예언되고 발견됐으며, 걸핏하면 노벨상은 그 분야로 갔다. 198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미국의 레온 레더만(1922~)은 소립자 발견을 소개하는 책에 《빌어먹을 입자(God-damn particle)》(1993)란 제목을 붙였다.
편집자가 욕 부분(damn)을 빼고 책을 《신의 입자》로 펴내자, ‘힉스 입자’는 갑자기 ‘신의 입자’란 별명을 얻었다. 어쨌거나 올가을에는 영국 물리학자 피터 힉스(1929~)도 노벨상을 받을지 모른다. 한국의 원자탄 개발과 관련됐다는 오해를 받았던 재미 물리학자 이휘소 씨(벤자민 리·1935~1977)가 1972년 논문에서 ‘힉스 입자’란 말을 처음 사용했다는 말도 있다.
이번에 발표된 것이 정말 힉스 입자인지는 연말에나 가서야 판명된다고 한다. 확인되면 지난 반 세기 동안 입자물리학자들이 개발해 온 소립자의 족보(표준모형)는 인정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우주·물질의 신비가 완전히 밝혀지는 것은 아니다. 우주의 대부분은 여전히 알지 못하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로 돼 있고, 그를 탐색하는 일이 거대 가속기의 다음 과제라고 물리학자들은 말한다.
그나저나 엄청난 투자를 감당하지 못해 미국은 가속기 연구의 주도권을 유럽에 넘겨준 꼴이다. 확증되지도 않은 발견을 유럽입자물리연구소가 섣불리 발표한 것은 유럽 경제위기에서 연구소가 살아남기 위한 언론플레이라는 말도 떠돈다. 과학계에도 대중인기영합(포퓰리즘)은 대세가 될 수밖에 없다. 국제 경쟁에서 미국은 표 수가 많은 유럽을 당할 수 없고, 언론 조작이 예산 배정을 크게 좌우하는 세상이다.
우리는 이런 거대과학의 어디쯤에 서 있는가? 소립자, 우주, 해양, 국방 등 거대과학 분야는 더 많아지는데, 우리는 이런 국제경쟁과의 합종연횡(合縱連衡)에서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 그것이 심각한 문제다.
박성래 < 한국외대 명예교수·과학사 parkstar@unitel.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