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자업체 샤프의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작년 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에 사상 최대 적자를 낸 데 이어 올해도 대규모 적자행진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올 들어 대만 기업 훙하이(鴻海)에 최대주주 자리를 넘기고 주력 공장을 매각하는 등 혹독한 구조조정을 추진했지만 효과는 신통찮다. 무리한 투자와 폐쇄적인 경영전략에다 엔고(高)라는 악재까지 겹친 결과다.

◆잘못된 선택과 집중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4일 “샤프가 LCD(액정표시장치) TV와 태양전지 패널 등 주력 사업에서 여전히 큰 손실을 내고 있다”며 “올 2분기(4~6월)에도 적자 규모가 1000억엔(약 1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LCD 가격 담합으로 북미 및 유럽 지역 PC업체에 지급해야 하는 160억엔의 벌금까지 더하면 손실 규모는 1000억엔을 넘어설 전망이다. 작년 4분기 1737억엔의 손실을 낸 이후 3분기 연속 1000억엔대 적자를 기록하는 셈이다.

1988년 세계 최초로 14인치 LCD TV를 개발, ‘LCD 원조’로 불리던 샤프는 2000년대 들어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한국 기업들의 공세에 밀려 세계 시장에서 입지가 좁아졌다. 30~40%를 넘나들던 평판TV 시장점유율은 2000년대 중반 이후 10%대로 내려앉았다. 샤프는 2007년 승부수를 던졌다. 1조엔(약 15조원)을 쏟아부어 오사카에 세계 최대 규모 TV용 LCD 공장을 지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패였다. 무리한 투자로 경영 상황이 오히려 악화됐고, 삼성전자 등과의 격차는 더욱 커졌다.

‘갈라파고스’로 비유되는 일본 기업 특유의 폐쇄적인 경영전략도 샤프의 발목을 잡았다. 최고의 품질을 유지한다는 명목 아래 자국 부품만 고집하며 수직계열화를 지나치게 추진한 것이 가격경쟁력과 유연성을 떨어뜨린 요인이라는 지적이다.

◆경영목표 수정 불가피

차세대 먹거리로 공을 들였던 태양전지 분야에서도 샤프의 고전은 계속되고 있다. 중국 기업의 저가 공세가 가장 큰 원인이다. 2007년까지 세계 1위였던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8위까지 추락했다. 대외 환경도 열악하다. 유럽발 글로벌 경제위기는 갈수록 심화되는 추세이고, 엔고 악재도 여전하다.

작년 말 수립했던 올해 경영계획도 고쳐 써야 할 판이다. 샤프는 올 회계연도(2012년 4월~2013년 3월)에 매출 2조7000억엔과 순손실 300억엔을 목표로 잡았다. 니혼게이자이는 “최근 상황을 볼 때 샤프의 적자 규모는 목표치를 웃돌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샤프는 위기 탈출을 위해 대규모 감원에 나설 방침이다. 오사카 공장 부지와 도쿄 본사 건물도 팔기로 했다. 태양전지 원료 공장 중 일부를 폐쇄하고, 가전 및 사무기기 등 상품별로 나뉘어 있는 판매회사를 통합하는 작업도 추진할 계획이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