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하 최소 8∼9월 지나야 효과"…부자들도 심리위축

국내 증시가 전례 없이 활기를 잃고 있다.

코스피가 연중 최저수준으로 떨어졌지만 단기적인 기술적 반등을 노리고 주식시장으로 돌아오는 단타성 투자자들조차 찾기 힘들다.

오히려 시장을 관망하다 지쳐 아예 예탁금을 빼내 단기자금으로 운용하는 분위기다.

한국은행이 13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시중 유동성을 나타내는 통화승수와 예금 회전율이 매우 낮은 수준이어서 통화정책에 따른 증시 부양 효과는 크지 않을 전망이다.

◇예금과 단기자금에 묶인 돈…"투자할 곳 없다"
시중에 자금이 돌지 않는다.

그런 만큼 증시의 `유동성 랠리'를 이끌 동력이 보이지 않는다.

15일 한국은행은 올해 5월 통화량(M2)을 본원통화로 나눈 통화승수가 21.9로 2000년대 들어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고 밝혔다.

통화승수는 금융회사들이 한은으로부터 공급받은 본원통화를 바탕으로 대출 등을 통해 시중에 공급한 통화량 규모를 나타낸 지표다.

통화승수가 낮으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효과도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국내 은행들의 예금 회전율도 작년 4.5회에서 올해 5월 4.0회까지 떨어졌다.

자유롭게 입출금하는 요구불예금의 회전율만 따로 떼어내면 작년 36.7회에서 5월 32.8회로 크게 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예금 회전율은 예금의 월중 지급액을 예금통화의 평균 잔액으로 나눈 값이다.

역시 시중 유동성을 나타내는 지표로 회전율이 낮다는 것은 은행에서 돈을 인출한 투자자가 그만큼 적었다는 뜻이다.

투자심리가 나빠진 탓에 주식시장은 심하게 침체돼 있다.

한국거래소와 한국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달 들어 11일까지 유가증권시장의 일평균 거래대금은 3조8천12억원에 그쳤다.

거래대금이 4조원을 밑돈 것은 2007년 3월 이후 5년 4개월 만에 처음이다.

주식에 투자하려고 증권사에 맡겨놓은 돈인 투자자 예탁금은 올해 1월말 20조원을 훌쩍 넘었으나 이달 11일 16조5천767억원까지 줄었다.

예탁금을 든 채로 증시를 관망하는 것도 지쳤다는 분위기다.

투자자들은 이 돈을 종합자산관리계좌(CMA)와 머니마켓펀드(MMF) 등 증시 주변의 단기자금으로 묶어놨다.

이는 예금 회전율이 감소 추세를 나타내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MMF 설정액은 이달 11일 72조9천345억원으로 작년 말에 비해 40% 가까이 급증했다.

같은 기간 CMA 잔고도 10% 넘게 늘어 39조원에 육박했다.

◇증시 떠난 자금 단기간에 돌아오지 않을 전망
코스피가 연중 최저점에 다다랐고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하해서 주식투자 매력이 커졌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주변 자금이 다시 증시로 회귀할 가능성은 적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유로존 금융위기와 중국 경제의 경착륙 우려가 좀체로 사라지지 않는데다 미국의 `재정 벼랑(재정정책의 효과가 갑자기 줄어드는 것)'도 시장의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

김병연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시중자금이 증시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보다 경기 둔화에 관한 우려가 더 크다.

기대 수익률 자체가 낮아져 있어 금리인하가 위험자산 선호로 이어지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돈을 풀고 있지만, 유동성 효과가 나타나려면 최소한 8~9월까지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그의 전망이다.

김순영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증시의 주가수익비율(PER)이 8배 수준으로 저평가돼 있는 점을 감안하면 주식형 펀드나 주식의 매력이 크다"면서도 "시장 전망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돈이 다시 들어오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장에서 직접 투자자들을 만나는 프라이빗뱅커(PB)도 경색된 증시 자금줄이 한동안 풀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조재홍 한국투자증권 V프리빌리지 강남센터장은 "PB들이 주식 투자를 적극적으로 권하는데도 투자자들의 반응이 미지근하다.

3%대 정기예금 금리를 받으면서도 주식을 계속 외면하고 있어 답답하다"고 전했다.

조 센터장은 "부자들도 상당히 위축돼 있다.

유로존 금융위기가 장기전에 들어간다면, 중국의 경기부양책이 빨리 효과를 내고 미국 경제가 안정되는 것이 심리 회복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재홍 변명섭 한지훈 기자 hanj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