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이사회(의장 오명 이사장)가 사실상 서남표 총장(사진)을 해임하기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KAIST 이사회는 오는 20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서 총장과의 계약을 해지하는 안건을 처리할 예정이라고 13일 밝혔다.

이사회는 그동안 교수협의회 등과 마찰을 빚고 있는 서 총장에게 자진 사퇴를 요구해왔으나 이를 거부하자 ‘계약 해지’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사회가 서 총장을 해임할 법적인 하자나 심각한 도덕적 결함 등을 찾지 못해 차선책으로 계약 해지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KAIST가 서 총장과 맺은 계약에 따르면 어느 일방이 90일 이전에 통보하기만 하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이사회에서 이 안건이 통과될 가능성은 높다. 16명의 이사진 중 서 총장 본인을 뺀 8명이 찬성하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데 오명 이사장을 비롯해 서 총장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이사진이 12명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 ‘친 서남표’로 분류됐던 이사진 4명 중 3명이 교체됐고 지식경제부와 교육과학기술부, 기획재정부가 지명하는 당연직 이사진 3명도 계약해지 안건에 찬성표를 던질 것이 확실해서다.

이와 관련, 서 총장은 오는 16일 서울 광화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공식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간담회에서 계약 해지의 부당성을 알리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서 총장 측은 “이사회가 해지 권한을 갖고 있는 만큼 처리 과정을 지켜볼 것”이라면서도 “그동안 교수협이 쏟아낸 의혹이 모두 사실과 다른데도 학교가 시끄러우니 나가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한 조치”라고 반발했다.

KAIST가 서 총장과 계약을 해지하면 2006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퇴임한 로버트 러플린 전 총장의 나쁜 전철을 다시 밟게 된다. 러플린 전 총장은 2004년 KAIST 최초의 외국인 총장으로 취임해 급진적인 개혁안을 내놨지만, 교수들과 불화를 거듭하다 2006년 7월 중도 하차했다. 러플린에 이어 2006년 취임한 서 총장도 기부금을 늘리고 교수 정년 심사를 강화하면서 한때 ‘대학 개혁의 전도사’로 불렸다. 하지만 지난해 4명의 학생과 1명의 교수가 자살하면서 성적에 따른 등록금 차등 제도, 전 과목 영어 강의 등 그가 추진한 학교 개혁안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KAIST 이사회가 서 총장과 계약을 해지하면 남은 임기 2년치의 임금 72만달러(약 8억2000만원)를 학교 예산으로 물어줘야 해 국고 낭비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KAIST 이사회는 2010년 서 총장과 계약을 연장하면서 중도에 그가 퇴임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계약을 해지하는 쪽이 손해를 배상하는 규정을 넣었다. KAIST의 한 관계자는 “이사회가 그간 서 총장의 자진 사퇴를 요구해온 것도 손해 배상을 하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