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바로 이 난에 쓴 칼럼이 나간 후 여러 곳에서 메일을 받았다. 역사와 현실을 민족사 전체의 흐름에서 보자는 취지로 쓴 글이었는데 이념 문제가 개입된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찬반양론이 뜨거웠다. 그래서 비슷한 맥락의 얘기를 조금 더 해보려고 한다.

너무도 당연한 소리지만 우리 5000년 역사는 우리가 없어지면 그만이다. 5000년이나 되는 긴 한민족의 이야기가 우주로 흩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는 한 5000년의 행진은 끊어짐이 없이 지속된다. 그 영속적인 면면함과 부단함 위에 지금 우리가 있고, 앞으로 이 땅에서 태어나고 살아갈 후손들이 있는 것이다.

원론적으로는 그렇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엊그제 태어난 5000만번째 신생아까지 합쳐서, 아니 북한까지 7000만이나 되는 겨레가 버젓이 있는 데도 중국은 호시탐탐 우리 역사를 강탈하려고 한다. 독도는 일본이 탐내고 백두산과 북방의 역사는 중국이 노린다. 역사란 우리 겨레의 생체 지도이며 정신적인 유전자다. 남이 빼앗는다고 우리가 잃어버릴 것은 아니지만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문제가 심각하다. 역사도 영토처럼 스스로 지키고 챙기지 않으면 남의 것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국민은 역사를 잘 모른다. 게다가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게 문제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본받고 싶어하는 인물로 이순신을 첫 손에 꼽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이가 많지 않다. 당연히 무엇을 본받아야 할지도 모를 수밖에 없다. 대부분이 그런 식이다. 세종대왕과 신사임당, 이이와 이황의 초상을 새긴 지폐를 갖고 다니면서도 정작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는 관심이 없다.

우리가 현실에서 겪는 많은 문제가 역사에 그대로 나와 있고 해법까지 명확한 데도 사람들은 바깥에서 답을 구하려고 하지 우리 역사를 살피지 않는다. 그 사이에 엉터리 삼류 드라마와 소설들이 판을 치고, 사람들은 그게 진짜 이순신이고 세종대왕이며, 우리 역사라고 굳게 믿는다. 지식인, 예술인들도 마찬가지다. 남의 역사를 소재로 쓴 작품들을 번역하느라고 혈안이 될지언정 제 나라 역사를 탐구하려 들지 않는다. 자기 나라 역사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거나 영화와 음악을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하는 일은 언제나 부럽고도 먼 남의 얘기일 뿐이다. 심지어 우리 것이라는 전승 판소리에도 남의 나라 적벽가는 있지만 김유신가나 이순신가는 없다. 이런 배경에서 역사 도둑놈들이 생겨나는 것이리라.

많은 학자들은 중국의 동북공정이 시작에 불과하다고 경고한다. 역사도 독도 못지않게 중요하고 지키는 방법도 똑같다. 국민 모두가 뜨거운 관심과 열정을 가지기만 하면 된다. 그러려면 먼저 5000만, 아니 7000만 겨레가 올바른 역사를 읽어야 한다. 그래서 누구보다 자국 역사에 해박하고 자랑스러워할 때 동북공정 같은 불순한 수작은 저절로 궤멸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정부 들어와서 더 그런지, 세월이 흐를수록 더 그런지 갈수록 세태가 상업화되고 있다. 모두가 잘 먹고 잘사는 데만 뜨거운 관심을 보인다. 상업적인 성공이 아니면 그 어떤 것에도 가치를 두려하지 않는다. 나라 전체가 무슨 거대한 시장 통이고 경제문제연구소인 것 같다. 다른 분야는 철저히 외면한 채 오직 경제 분야 하나에만 천착해 온 절름발이 현대사의 당연한 귀결이 아닌가 한다. 이제는 성장의 그늘에서 정신적인 것들을 찾아 복원해야 할 때다. 사람에 비유하면 우리 사회는 화려한 외모와 허우대 좋은 우량아는 되었지만 다른 수준은 보잘 것 없는 미숙우량아다. 이순신의 사상과 업적을 연구하는 학교를 하나 만들자고 하니 우리나라에선 별 반응이 없는데 일본 모 기업에서 거액을 내놓겠다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잘 먹고 잘사는 꿈은 동물들도 꾼다. 그 꿈만 가지고 국가나 인류가 추구하는 공동의 가치를 논할 수는 없다. 이제는 정말 중요한 것들을 민족사에 보태고 담아야 하지 않겠는가.

김정산 < 소설가 jsan1019@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