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야당의 법안 발의 단계여서 성사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면서도 재벌 해체 같은 ‘대기업 때리기’로 유권자들의 표를 사려는 포퓰리즘 경쟁이 정치권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재계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순환출자 금지. 63개 대기업 집단 중 삼성, 현대자동차, 롯데, 현대중공업 등 주요 15개 그룹의 지배구조가 순환출자로 엮여 있어서다.
민주당은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기 위해 기존의 순환출자를 3년 내 해소하고 신규 출자를 못하도록 했다. 하지만 대기업들은 “역사적 산물인 순환출자를 오너 일가의 지배력만 높이는 도구로 오해하고 있다”고 항변하고 있다.
순환출자는 1990년대 김영삼 정부 때 기업공개(IPO)를 독려하면서 본격화됐다는 게 재계의 지적이다. 기업 내부에 유보된 자금으로만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는 지분을 확보할 수 없어 계열사 간 상호 출자를 택했다는 주장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 자금 사정이 악화되면서 더욱 확산됐다.
재계는 국부 유출 가능성도 높다고 보고 있다. 대기업 지분을 인수할 만한 국내 자본이 없는 상황에서 순환출자를 해소하려면 결국 투기적 해외펀드에 대기업 지분을 내줄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순환출자는 기업들이 성장하기 위해 당시 법과 규제에 적응하면서 나타난 부산물”이라며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 옳고 그르다고 단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재계는 민주당이 징벌적 손해 배상을 도입하려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민주당은 하도급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통해 원청업체들의 손해 배상 책임을 피해금액의 3배까지 두도록 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현행법상 입증 책임을 원청 사업자에게만 부과하고 있어 공정거래위원회가 일방적으로 위법하다고 결정하면 대기업들의 배상 책임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법안 발의 단계인 만큼 지켜보자는 의견도 적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앞으로 재계와 사회 각계의 의견을 들으면 법안도 정비가 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다만 이 관계자는 “경제민주화 테두리 안에서 공생하자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여당과 야당의 포퓰리즘 경쟁 속에서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법안이 쏟아져 기업 투자와 고용을 늘리는 데 발목을 잡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정인설/서욱진/윤정현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