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1년 대서양의 외딴섬 세인트헬레나에서 죽은 나폴레옹의 시신을 부검한 의사는 사인을 위암이라고 판정했다. 하지만 추종자들은 “나폴레옹 같은 영웅이 배가 아파 죽었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들고 일어났다. 그래서 나온 게 비소 독살설이다. 시종장 회고록에 복통 구토 등 중독증상이 기록돼 있고, 오래도록 시신이 부패하지 않았으며, 머리카락 비소농도가 보통사람보다 휠씬 높다는 이유였다. 2000년대 들어 과학자들이 정밀검토를 거쳐 부검 기록대로 위암이란 의견을 내놨으나 독살설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얼마 전 크렘린 궁에 안치된 제정 러시아 귀족들의 유골을 분석하던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학자들은 깜짝 놀랐다. 상당수 유골에서 수은 납 비소 등 중금속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치열한 궁중 암투에서 독살된 사람이 여럿이라는 소문을 뒷받침하는 단서가 나왔던 거다. 러시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막심 고리키도 스탈린의 지시로 독살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스탈린 역시 공식 사인(死因)은 뇌일혈이었으나 자신이 키운 비밀경찰 총수에 의해 독살됐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중국도 만만치 않다. 전한(前漢) 말의 정치가 왕망(王莽)은 자신의 사위 평제(平帝)는 물론 아들까지 독살한 뒤 스스로 가황제(假皇帝)에 올랐다. 그렇게 권력을 찬탈했지만 건국 15년 만에 장안의 미앙궁(未央宮)에서 부하에게 찔려 죽고 말았다.

영어 포이즌(poison)은 라틴어로 ‘한모금’을 의미하는 포티오(potio)에서 유래했다. 한두 방울의 독극물을 술에 타서 정적을 죽이던 로마시대의 유행이 언어로 정착됐다고 한다. 방법이 워낙 간단하고 은밀해서인지 독살설은 역사의 고비마다 등장하곤 했다.

얼마 전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서기의 부인 구카이라이가 영국인 사업가를 독살한 혐의로 체포되더니 이번엔 야세르 아라파트 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독살설이 퍼지고 있다. 2004년 11월 파리의 한 병원에서 숨진 아라파트의 진료기록엔 사인이 감염에 따른 뇌출혈로 돼 있지만 실은 방사능 중독이란 내용이다. 스위스 로잔대 방사선연구소 조사에서 아라파트의 옷과 칫솔, 두건 등에서 치사량의 폴로늄이 검출된 게 증거로 제시됐다. 아라파트 사망 직후에도 간경변, 에이즈, 백혈병, 이스라엘 독살설 등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국제조사단 구성을 추진 중이고, 미망인 수하 아라파트는 시신 부검을 요청했단다. 만일 독살로 드러나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관계는 다시 거칠어질 게다. 살아서는 모순에 찬 정치이력으로 굴곡을 겪더니 죽어서도 자꾸 뒷말이 나오는 것을 보니 딱하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