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걸려도 남는 장사"라는 작전세력
“금융감독원에서 제가 숨겨둔 계좌 중 3개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거기에 수십억원이 들어 있으니 수임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A변호사는 지난해 주가조작 혐의로 고발된 의뢰인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 의뢰인은 이른바 ‘작전’을 통해 번 돈 대부분을 다른 사람 이름으로 만든 차명계좌에 은닉했다. 금감원이 계좌를 뒤졌지만 몇 개는 찾지 못했다. “주가조작에 대한 처벌을 받더라도 숨겨둔 돈이 있으니 괜찮다”는 얘기였다.

지난 7일자에 보도한 ‘증시 휘젓는 신(新)게릴라…시세조종 세력의 진화’란 기사를 취재하기 위해 만난 A변호사는 주가조작 수익 환수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주가조작 사범들 사이에서는 ‘징역3년을 선고받으면 3년짜리 정기예금에 번 돈을 맡겼다가 출소할 때 가져가면 된다’는 말이 공공연하다”고 전했다. 차명계좌 등에 숨겨둔 범죄수익을 금융당국이나 검찰이 제대로 찾아내지 못해 ‘걸려도 남는 장사’라는 것이다.

A변호사는 “주가조작 사범들이 만약 불법으로 100억원을 벌었다면 금감원에서는 60억원을 찾아내고, 검찰에서는 이 중 50억원만 범죄로 기소하고, 법원에서는 30억원에 대해서만 유죄 판결을 내린다”고 꼬집었다.

법원이 유죄를 선고한다고 해도 범죄수익을 거둬들이는 경우도 드물다. 본지가 올 1월부터 6월까지 주가조작으로 유죄를 선고한 전국 1심 판결 16건을 분석한 결과 범죄수익을 몰수·추징한 건수는 2건밖에 없었다. 형법과 범죄수익환수에 관한 법률 등에는 마약 및 뇌물 범죄 수익은 ‘몰수·추징한다’고 규정돼 있다. 반면 주가조작 수익은 ‘몰수·추징할 수 있다’고만 돼 있다.

한 관계자는 “검찰이 재판에서 몰수·추징을 구형하지 않고 넘어가기도 하고, 검찰이 구형해도 법원이 판결에서 누락하는 등 한마디로 엉망”이라고 지적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난해 변호사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범죄수익 환수의 문제점을 들며 “한국은 주가조작하기 참 좋은 나라”라고 자괴감 어린 발언을 하기도 했다.

증시에서 작전세력들의 수법은 더욱 교묘해지고 있다. 이들을 뿌리뽑으려면 적발 기법을 첨단화하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 적발되면 형사처벌과 함께 모든 범죄수익을 몰수해 ‘걸려도 남는 장사’라는 인식을 뿌리뽑는 일도 시급하다.

임도원 증권부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