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부장검사 김주원)는 주가조작 혐의자 A씨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A씨가 사용한 수법은 이른바 ‘상한가 굳히기’. 그는 전체 매도 물량의 2~20배에 달하는 상한가 주문을 내 강한 매수세가 있는 것처럼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신종 수법을 사용했다. 다음날 주가가 오르면 보유 주식을 팔고 빠져나가는 방식으로 54억원의 부당 이익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대형 로펌 변호사들을 선임해 “상한가에서 다음날 주가가 급락할 리스크를 짊어진 정당한 투자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세조종, 이른바 ‘작전’의 수법이 진화하면서 금융당국과 검찰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정보기술(IT)을 활용한 신종 수법이 등장하면서 적발하기 쉽지 않고 확실한 불법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려워지고 있어서다.

홈트레이딩시스템·인터넷 메신저·SNS 등 활용

금융감독원은 요즘 주가조작 세력을 ‘5세대’로 분류한다. 1960년대 발생한 ‘증권 파동’을 시작으로 작전의 역사는 시작됐다. 당시 작전세력은 발행 물량이 적었던 증권·금융주를 집중 매수해 5개월 만에 420배나 급등시켰다.

‘작전 2세대’로 불리는 세력들은 부실 기업을 분식회계로 포장해 증시에 상장시킨 뒤 주가를 조작해 차익을 남기는 수법을 사용했다. 기업인과 증권사 직원, 회계사가 연루된 신정제지 부도 사건(1992년)이 대표적이다. 외환위기 이후엔 허위 호재를 발표해 주가를 올리는 수법이 유행했다. ‘무세제 세탁기’, ‘냉각 캔’, 있지도 않은 보물선을 발굴한다고 했던 ‘이용호 게이트’ 등이 이런 유형(3세대)이다.

2000년대 들어선 작전세력(4세대)이 조직화된다. ‘전주-주포-사이드포’로 연결된 세력은 치밀하게 작전을 기획한 뒤 차명계좌를 이용하고 하수인까지 동원해 차익을 남겼다. 최근 판치고 있는 5세대는 홈트레이딩시스템(HTS), 인터넷 메신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활용해 1~3명이 2~3일간 소규모로 치고 빠지는 수법을 구사하고 있다.

초단위 1~10주씩 수백회 매매로 주가조작 ‘틱 떼기’ 유행

요즘 유행하는 수법은 ‘틱 떼기’다. 틱이란 호가 하나의 단위를 뜻한다. 1000원짜리 주식을 990원, 1010원 식으로 10원 단위로 주문을 넣는다면 10원이 ‘1틱’이다. 즉 틱 단위로 소액만 챙기고 빠져나가는 수법이다.

지난 4월 금감원에 적발된 B씨가 대표적 사례다. 그는 1초 단위로 1~10주씩 수백회의 매매 주문을 넣고 계좌 간 주식을 사고파는 방법으로 매매가 왕성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일반투자자들이 달라붙어 몇 틱 정도 주가가 오르면 파는 방식으로 2억여원을 챙겼다. 하은수 금감원 테마주특별조사반장은 “HTS에 단축키로 특정 주식의 매도와 매수 주문을 입력한 후 두 키를 반복해 두드리면 1주짜리 매매가 몇 분 안에 수백회 체결된다”며 “일반인들은 HTS를 보다 소량이라도 계속 매매가 이뤄지는 것을 보고 ‘낚시’에 걸리게 된다”고 말했다.

사진까지 조작하는 ‘재료매매’…시세조종으로 변질

금융 당국은 ‘재료매매’도 주가조작 세력과 연계됐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증권사 수익률 대회 우승자 출신으로 하루평균 50~60% 수익을 올린다고 알려진 C씨를 통해 유명해진 방법이다. 예컨대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서 장관 동향이나 보도자료 배포 시점을 파악하고 있다가 줄기세포 관련 세미나에 장관이 참석한다는 내용을 알게 되면 전날 미리 줄기세포 관련 종목을 사서 보도가 나오면 주가가 오른 뒤 파는 방식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재료매매를 하는 투자자들은 4~5명이 매일 수천개의 인터넷 카페와 뉴스사이트를 체크한다”며 “호재성 뉴스가 나오면 팀 간에 연계해서 매수 주문을 번갈아 내면서 주가를 끌어올리는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과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인 대현의 신현균 회장이 같이 찍은 것처럼 합성한 사진을 유포해 주가를 조작했다가 적발된 30대 남성도 재료매매로 볼 수 있다.

월급 400만~700만원 주고 하수인 고용하기도

작전세력이 소규모화되면서 주가조작 행위자와 최종 수익자도 분리되는 추세다. 과거에는 동업식으로 각자가 함께 주가조작을 했다면, 요즘은 주도자가 ‘월급’을 주는 식으로 하수인(일명 기술자)들을 부리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11일 386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구속기소된 정치테마주 시세조종 세력 편모씨 일당은 친척 등을 통해 소개받은 지인들에게 월 400만~700만원과 주가조작 자금을 주고 그들의 계좌로 주식 매매를 하게 한 것으로 조사됐다.

솜방망이 처벌이 작전 부추겨…1심 징역형 겨우 11% 불과

주가조작은 날로 교묘해지고 있지만 처벌은 가볍기 짝이 없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0년 증권범죄 가운데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비율은 11.5%에 불과하다. 법원이 작전세력에 유죄를 선고해도 범죄수익을 추징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경제신문이 1월부터 6월까지 주가조작으로 유죄를 선고한 전국 1심 판결 16건을 분석한 결과 범죄수익을 추징한 경우는 2건밖에 없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올해부터 상시적으로 테마주 작전세력을 조사하고 있지만 처벌이 가볍다 보니 작전세력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 시세조종

비정상적인 매매기법으로 특정 종목의 주가를 부양해 부당이득을 취하는 행위.

◆ 통정매매

두 명 이상이 모의해 상호간 보유 주식 물량을 사고팔기를 반복함으로써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매매 기법.

◆ 틱떼기

특정 종목의 시세보다 10원 또는 20원 정도 차이나는 가격으로 매매 주문을 수차례 내는 기법.

◆ 재료매매

인터넷메신저 SNS를 통해 호재성 허위 뉴스를 유포함으로서 주가를 띄우는 기법.

◆ 상한가 굳히기

상한가 근처까지 주가가 급등한 종목에 대해 매도 잔량보다 훨씬 많은 대량의 상한가 매수 주문을 냄으로써 더 이상 매매가 이뤄지지 않도록 하는 기법.

◆ 주포·사이드포

작전 전반을 기획하고 실행 과정을 통제하는 사람을 주포라고 한다. 사이드포는 주포의 의뢰를 받아서 주식 매매를 대행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임도원/김동윤/안재광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