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첫발…'출마 공간'의 정치학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박근혜), 광화문광장(손학규), 서대문 독립공원(문재인), 종로 광장시장(정세균), 해남 땅끝마을(김두관). 18대 대선에 출마하는 여야 후보들이 ‘출사표’를 던졌거나 예정된 곳이다. 단순한 장소를 넘어 대선을 향한 후보들의 상징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0일 대선 출마선언을 하는 곳은 영등포 타임스퀘어다. 이곳은 교복 입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밥을 먹고, 연인들이 영화관 데이트를 하는 번화가다. 바로 옆엔 재래시장이 있다. 말 그대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각계각층을 아우를 수 있는 곳이다. 그의 약점으로 지적돼온 소통의 문제를 해소하는 장으로 활용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시민들의 출입이 제한되는 국회의사당, 정치 행사가 불가능한 한강시민공원, 지나치게 엄숙한 국립현충원과 전쟁기념관, 협소한 구로디지털단지 등의 후보군이 탈락한 것 역시 소통이 어렵다는 차원에서였다고 한다. 박 전 위원장이 과거 이곳을 방문했을 때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최경환 경선캠프 총괄본부장은 6일 “30분가량의 식전행사는 소박하면서도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통합당 잠룡들의 튀는 장소 선택은 30년 정치를 한 사람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도전자’의 입장이기 때문에 보다 입체적이고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이다.

손학규 상임고문은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세종대왕 리더십’을 내세워 민생과 통합을 이야기했다. 광화문광장은 촛불집회 등이 열렸던 야권 인사들의 성지(聖地)로 손 고문이 선점한 것이다. 문재인 상임고문은 독립운동과 민주주의 역사가 담긴 서대문 독립공원을 골랐다. 박 전 위원장과 각을 세우며 민주화의 정통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세균 상임고문은 “국민의 삶 속에서, 현장에서 함께 호흡하겠다”며 서울 종로의 광장시장을 택했다. 민생 챙기기에 올인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한 것이다. ‘농민의 아들’을 자임하는 김두관 경남지사는 8일 전남 해남 땅끝마을을 찾아 출마를 선언한다. 맨 아래부터 성장한 자신의 서민적인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빗속에서 청바지와 헤드셋 마이크를 착용하고 ‘출마 프레젠테이션’을 한 김영환 의원은 국립과천과학관을 택해 ‘젊음과 창조’를 살렸다.

해외 정치판에서도 공간 선택을 둘러싼 머리싸움은 치열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흑인 노예해방 투쟁을 시작한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 광장으로 향했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모스크바 아이스하키 경기장에서 ‘강한 러시아’를 약속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