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세 젊은 나이에 알리바바닷컴에 이은 중국 2위 전자상거래 사이트 ‘360바이닷컴(360buy.com)’을 일군 류창둥(劉强東·리처드 류) 징둥상청(京東商城) 최고경영자(CEO)에게 붙은 별명들이다. 미국 경제주간 포천은 지난해 중국 젊은 엘리트 기업인 1위로 류 CEO를 꼽았다. 40세 이하의 젊은 기업가 중 가업을 물려받은 ‘푸얼다이(富二代·재벌2세)’가 아닌 스스로 창업한 자수성가형 인재로는 독보적이라는 이유를 달았다. 그는 잠재력과 중국 재계에 미치는 영향력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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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실패가 보약이 되다
1994년. 20살의 중국 런민대 3학년생이었던 류창둥은 아버지로부터 20만위안(약 3600만원)을 빌렸다. 그 돈으로 베이징에 음식점을 열었지만 몇 달 만에 말아먹었다. 사업을 쉽게 본 게 화근이었다. 장쑤성(江蘇省) 시골 마을에서 영재 소리를 들으며 런민대 사회과학대에 진학했지만 전공보다는 컴퓨터에 흥미를 느꼈던 그는 짬짬이 프로그래밍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쉽게 돈을 벌었다.
한번에 큰 돈을 벌 생각으로 집에서 돈을 빌려 ‘만만한’ 음식사업을 시작했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그는 “처음 드는 생각은 인간 본성에 대한 실망이었다. 종업원들에게 그렇게 잘해줬는데 배신을 당하자 인간이 선한 존재인가, 악한 존재인가 계속해서 고민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빚을 갚기 위해 1996년 대학 졸업 후 보험회사인 일본생명에 들어갔다. 2년간 조직 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사업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남탓이 아니라 내탓’이란 것을. 음식점 겉모양은 화려하게 장식했지만 회사를 체계적으로 관리·감독할 경영구조를 갖추지 못했고, 회계·금융 시스템도 없었다. 뒤늦게 깨달았지만 소중한 교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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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창둥은 빚을 다 갚자마자 1998년 1만2000위안(약 216만원)의 ‘소박한’ 자본금을 갖고 ‘베이징의 실리콘밸리’라는 중관춘(中關村)에 징둥공사(京東公司)라는 가전제품 판매점을 차렸다. 실패를 교훈삼아 빈틈을 없애겠다고 결심했다. 재고 관리부터 회계까지 일일이 직접 관리했다. 류 CEO는 지금도 그때 버릇이 남아 매일 아침 200여명의 매니저들과 화상회의를 통해 재고관리 등 세부사항까지 챙긴다. 이후 사업은 성장을 거듭했다. 몇 년 만에 4개 도시 12개 지점을 가질 정도로 회사도 커졌다.
회사가 도약하는 데는 천운(天運)도 따랐다. 2002년 중국 전역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공포가 뒤덮었다. SARS 바이러스가 맹위를 떨치면서 중국 전역에서 수백명이 사망했다. 사람들은 집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를 꺼렸다.
전자제품 매장은 파리를 날렸다. 고심하던 류 CEO에게 한 매장관리인이 “온라인 판매로 사업 방향을 돌리자”고 제안했다. 류는 당시까지만 해도 인터넷을 써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매장 관리인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방향 전환은 맞아 떨어졌다. 2005년 회사의 온라인 매출이 1200만달러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다. 류 CEO는 이 시점에 또다른 중요 결정을 내렸다. 온라인 판매에 전력키로 한 것. 이렇게 2005년 탄생한 회사가 360바이닷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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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는 성장
360바이닷컴은 이후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지난해 거래 규모는 309억6000만위안(약 5조59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00% 이상 늘었다. 매출액은 210억위안. 올해는 매출을 450억위안으로 두 배 이상 키우고, 내년에는 700억위안(약 12조6000억원)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중국 내 기업-소비자 간(B2C) 전자상거래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4분기 14.7%에서 올해 1분기 17.2%로 올라갔다. 중국 B2C 전자상거래 시장 규모는 818억위안 정도로 알려져 있다. 해외에도 진출해 미국, 대만 등 37개국으로 영업망을 확장했다.
지난해엔 인터넷 전문 투자 벤처캐피털인 러시아 디지털스카이테크놀로지스(DST)로부터 투자자금 5억달러(약 5720억원)를 유치하기도 했다. DST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업체인 페이스북과 게임업체 징가, 소셜커머스 업체 그루폰에 투자했던 ‘매의 감식안’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 회사다. 그만큼 360바이닷컴의 성장 잠재력을 높게 평가받은 것이다. 애플과 구글, 유튜브에 투자해 큰 재미를 봤던 미국 세쿼이어캐피털과 유통시장의 잠재적 경쟁자인 월마트도 경쟁적으로 360바이닷컴에 투자했다.
360바이닷컴이 이처럼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평가받게 된 비결은 ‘중국 기업 답지않은’ 빠른 물류시스템을 갖췄기 때문이다. 고객이 오전 11시 이전에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중국 주요 지역에선 당일 오후 6시 전에 물건을 받을 수 있다. 오후 11시 전에 주문하면 다음날 오전 9시까지 물건을 수령할 수 있다. ‘100분 정책’이라고 이름 붙은 서비스도 있다. 배달 물품에 불만이 접수되면 100분(1시간40분) 안에 불만 접수품을 회수하는 것이다. 360바이닷컴이 현금을 대규모로 보유하고 있는 데다 300여개 주요 도시에 거미줄 같은 배달망을 갖추고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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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法治)로 나스닥도 점령한다”
류창둥 CEO는 올해 안에 미국 나스닥에 상장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메릴린치와 골드만삭스, JP모건, UBS 등을 상장주관사로 선정했다. 몇 달 안에 상장신청서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하기로 했다. 인수·합병(M&A)과 물류에 투자할 자금을 확보해 5년 안에 선두업체 알리바바를 따라잡는 게 목표다. 회사 측은 기업가치가 100억~120억달러(약 11조4000억~13조7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360바이닷컴은 IPO로 10억달러를 조달하면 현재 보유하고 있는 10억달러를 합쳐 오픈마켓으로 변신을 시도한다는 구상이다. 제품을 매입해 직접 판매하는 종합쇼핑몰로는 사업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 수많은 판매자가 입점하는 온라인상 유통업체로 변신하겠다는 것이다.
류 CEO는 성장을 추구하면서도 ‘법치(法治)’를 강조하고 있다. 그는 “법규를 철저하게 준수하는 게 중국 관행으론 쉽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회사 회계가 조금이라도 투명하지 못하면 언론이 문제를 제기하게 되고 결국 회사 브랜드 가치가 손상된다”고 말했다. 또 “큰 기업 안에서 발생하는 사적(私的)인 일은 큰 문제를 야기하곤 한다”고도 했다. ‘법에 기반한 성장’이 그의 목표다.
직원들에게도 정성을 기울인다. 직원들이 회사에 자부심을 가져야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입 사원에게는 중국 기업으로는 고연봉인 10만위안(약 1800만원)을 지급하고, 1년간의 전문 직업교육도 시켜준다. 중·고위급 관리자들에겐 상하이에 있는 중국유럽국제경영대학원에서 최고경영자 과정을 밟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이 밖에 회사 규모가 급격히 커질 것에 대비해 물류 투자도 강화키로 했다. 올해 3월엔 상하이 특송업체 CCES를 인수했고, 앞으로 3년간 물류 분야에만 100억위안을 투자키로 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포동포동한 얼굴, 고생이라고는 해보지 않았을 법한 인상의 류 CEO는 회사 내부에서 마오쩌둥으로 불리고 있다”고 평했다. B2C 분야 천하통일을 노리는 360바이닷컴의 야심을 마오쩌둥에 비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