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층 세금을 올려 재정적자를 줄이려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민주당에 눈엣가시 같은 존재. 공화당 하원의원 95%로부터 증세 반대 서약을 받아낸 인물. 워싱턴DC에서 비영리 로비단체 ‘세제개혁을 위한 미국인들(ATR·Americans for Tax Reform)’을 이끌고 있는 그로버 노퀴스트 회장이다. 그가 주도하고 있는 ‘납세자보호서약(Taxpayer Protection Pledge)’ 운동에는 238명의 공화당 하원의원과 41명의 공화당 상원의원이
서명했다.

노퀴스트 회장은 정부가 세금을 올리지 못 하도록 정부와 의회에 압력을 가하며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내는 활동을 하고 있다. 백악관은 “그의 로비 탓에 의회 내 협상이 마비돼 정책 집행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고 불만이다. 1985년 로널드 레이건 전 정부 시절에 ATR을 창설한 뒤 27년간 세금 인상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는 그를 워싱턴 사무실에서 만났다.

▶납세자 보호서약 내용은.

“의원들이 소득세 및 법인세를 인상하려는 정부의 어떤 노력에 대해서도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세금 인상을 위한 법안 표결에도 반대표를 던질 것을 서약하는 것이다. 또 세율 인하를 동반하지 않는 어떤 형태의 소득
공제와 세액공제 축소에도 반대하겠다는 것을 맹세한다. 현역 의원뿐만 아니라 선거 기간에는 출마한 예비후보자들의 서명도 받는다.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 밥 돌 전 상원의원,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미트 롬니 등 거의 모든 공화당 대통령 후보들이 서명했다. 공화당 의원들의 참여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2010년 208명이 서명했는데 올해 279명으로 늘어났다. 공화당 하원의원 중 95%가 서명했다. ATR은 해마다 모든 의원들에게 서명 요청을 하고 있다.”

▶서명운동을 시작한 지는 오래됐나.

“공화당 소속인 레이건 전 대통령이 1986년 세제개혁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ATR에 도움을 요청했다. 서명운동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당시 세제개혁은 미국 역사상 가장 포괄적인 세제개혁 조치였다.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을 50%에서 28%로 낮췄다. 그러나 레이건 정부이후 세제개혁은 잘못된 방향으로 흘렀다. 법인세는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인 35%에 달한다. 개인소득세도 최상위 수준이다.”

노퀴스트 회장은 1956년 매사추세츠 주에서 태어났으며 하버드대에서 학사와 MBA(경영학석사)를 마쳤다. 20세 초반에 국가납세자연맹 등 보수시민단체에서 활동했다. 이후 1983~1984년 미국 상공회의소의 이코노미스트 및 수석 연설전문가로 일하다가 1985년 레이건 정부 측 요청을 받고 본격적인 세금 인상 반대운동에 나섰다.

▶ATR을 설립한 목적은.

“ATR은 1985년에 설립했다. 어떤 형태의 세금 인상도 반대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작은 정부’ 즉, 정부 지출을 줄이자는 것이다.”

▶정부가 재정적자를 줄이려면 세금을 인상할 필요도 있지 않나.

“세금을 올린다고 재정적자가 줄어들지 않는다. 과거 경험에서 알 수 있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인 1990년 5월 민주당과 공화당은 ‘세금을 1달러 인상할 때마다 지출은 2달러 축소한다’는 안에 약속하며 예산안에 타협했다. 1991~1995년 1370억달러에 달하는 세금 인상이 이뤄졌다. 하지만 지출이 줄어들기는커녕 230억달러 늘어났다.”

▶세금을 더 거두면 지출도 더 늘릴 수 있는 것 아닌가.

“올해 초 공화당의 존 베이너 하원의장과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가 민주당과의 협상테이블에서 세금 인상안을 완전히 제외하자 대통령과 민주당은 결국 10년간 2조5000억달러에 이르는 지출 감소에 합의했다. 이런 여러 사례를 미뤄보면 세금 인상안이 협상테이블에 올라올 때 지출 감소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세금 인상 여지를 없애야 정부가 지출 축소에 나서게 된다는 얘기다. 재정적자는 세금 부족 문제가 아니다. 방만한 지출이 원인이다.”

▶워런 버핏은 부자들이 세금을 덜 낸다며 부유층에 대한 세금 인상을 주장하고 있다.

“사실과 다르다. 부자들이 세금을 더 많이 낸다. 절대 금액뿐만 아니라 세율에서도 그렇다. 부유층 소득은 대부분 배당이나 자본이득 등 투자 관련 소득이다. 버핏이 근로소득에서 17%의 세금을 냈다고 하더라도 배당소득과 자본이득에서 15%의 별도 세금을 냈다.”

▶양극화 해소를 위한 부유층 세금 인상도 반대하나.

“그렇다. 정치인들은 부자들에게만 세금을 올리겠다고 약속하지만 이건 역사적으로 거짓말인 것으로 드러났다. 부유층에 대한 세금 인상은 결국 중산층에 대한 세금 인상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미국 시민들도 이제 깨닫기 시작했다.”

▶역사적인 전례가 있었는지.

“1913년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개인소득세가 처음 도입됐다. 7%였던 개인소득세는 당시 연봉 50만달러, 현재가치로 따지면 1150만달러 이상 부유층에게만 적용됐다. 하지만 지금 미국 가정의 절반이 개인소득세를 내고 있다. 미국의 최저제한세(AMT)도 마찬가지다. 당초 1969년 공공채권에 투자하면서도 연방세를 거의 내지 않고 있던 115명의 부자들을 타깃으로 도입했지만 지금은 4백만 가정이 최저제한세를 적용받고 있다.”

▶한국에서도 복지 확대를 위한 세금 인상 문제가 정치권의 이슈로 떠올랐다.

“큰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항상 재정지출을 늘리기 위해 세금을 올리려고 한다. 세금 인상을 통한 지출 확대는 남의 돈을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으로 볼수 있다. 좋은 방안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 아니다.”

노퀴스트 회장은…워싱턴 거물 움직이는 파워 로비스트

그로버 노퀴스트 ATR 회장을 인터뷰하면서 ‘보수 원칙론자’란 생각이 떠올랐다. 특히 “세금을 올리는 것은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다. 정부가 세금을 거둬 복지예산을 증액한다고 소득격차가 해결되지 않는다. 부자들의 돈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에게 준다고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것도, 빈부격차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한 대목에선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그는 보수주의 시민운동가 정도로 볼 수도 있지만 사실은 미국 워싱턴 정가의 숨은 권력자로 통한다. 지난해 11월20일 미 의회의 재정적자 감축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월스트리트저널은 “미 의회가 정해진 기한 내에 합의점을 찾지 못할 것”이라며 “이는 보수단체 ATR의 노퀴스트 회장 탓”이란 기사를 실었다.

어떤 세금 인상에도 반대한다는 내용의 ‘납세자보호서약’에 서명한 공화당 의원들이 노퀴스트의 눈치를 보고 있어 세금 인상을 주장하는 민주당과의 협상에 진전이 없다는 지적이었다.

노퀴스트 회장은 “ATR의 증세 반대운동으로 지난해 미국 50개 주 가운데 45개 주가 주정부 세금을 인상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ATR은 기부금으로 운영되고 있고, 기부자는 10만명에 이른다. 그는 2004년 48세의 늦은 나이에 팔레스타인의 이슬람 여성과 결혼했다. 두 아이를 입양해 키우고 있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