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평균치보다 높은 수익률을 주식시장에서 지속적으로 내는 것이 가능할까.

대부분 펀드매니저들은 ‘가능하다’고 믿는다. 저평가 주식을 찾기 위해 공장을 방문하고, 매장을 돌아다니고, 재무제표를 뒤진다. 가장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펀드매니저는 ‘월가의 영웅’으로 불리는 피터 린치(68)다.

정반대 의견을 갖고 있는 펀드매니저들도 있다.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은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주식의 내재가치는 가격에 이미 반영돼 있다는 것이다. 저평가 주식이나 성장주를 찾으려고 애쓰기보다는 ‘시장의 평균 수익률’을 자동으로 따라가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면 된다는 견해다. 주식을 고르는 데 쓰는 비용이 거의 없기 때문에 자산운용 수수료를 아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인덱스 펀드 창시자’인 존 보글(83)이 대표적이다.

◆펀드매니저 ‘전설’이 되다

미국 보스턴에서 1944년 태어난 피터 린치는 열 살 때 아버지를 잃었다.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으로 그는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골프장 캐디로 일했다.

당시 골프장을 드나들던 사람들은 주식에 관심이 많았다. 린치는 투자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골프장에서 일하면서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보스턴대학에 다니면서도 캐디 일을 한 린치는 피델리티 사장이던 조지 설리번을 골프장에서 만났다. 그는 피델리티인베스트먼트에 입사해 금방 두각을 나타냈고, 펀드매니저가 됐다.

그가 1977년부터 1990년까지 운용을 맡은 마젤란펀드는 연평균 29.2%의 수익률을 올렸다. 같은 기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연평균 상승률(15.8%)의 두 배 가까운 수치다. 그가 운용을 시작한 1977년 5월 마젤란펀드에 1만달러를 넣어뒀다면 그가 은퇴한 1990년 5월 27만달러로 불어났다는 계산이 나온다.

린치는 마젤란펀드를 운용하는 동안 연간 단위로 단 한 차례도 손실을 본 적이 없다. 다우존스산업평균 지수가 하루 만에 22.6% 폭락한 ‘블랙 먼데이’가 있었던 1987년에도 마젤란펀드는 수익을 냈다.

미국 월가에서 10년 이상 경력을 쌓은 펀드매니저 가운데 이런 기록을 갖고 있는 사람은 린치가 유일하다. 그의 명성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돈을 맡기려는 투자자들이 밀려들었다. 운용 첫해 1800만달러에 불과했던 마젤란펀드 총 자산은 13년 뒤인 1990년 120억달러로 불어났다. 은퇴할 당시 그의 나이는 46세였다.

◆펀드의 새 흐름을 만들다

존 보글은 린치보다 열다섯 살 많다. 대공황이 발생한 1929년 미국 뉴저지 몽클레어에서 태어난 그는 대폭락한 주가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급등하는 ‘대세 상승기’를 지켜봤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프린스턴대학을 다닌 그는 졸업논문으로 ‘뮤추얼펀드의 경제적 역할’을 썼다. 뮤추얼 펀드에 관한 최초의 논문이었다.

보글은 1951년 웰링턴매니지먼트라는 투자회사에 들어갔다. 그의 역할은 펀드매니저였다. 하지만 그는 ‘시장의 평균 수익률보다 더 많은 이익을 내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갖고 있었다. 좋은 주식을 고르기 위해 펀드매니저들이 쓰는 비용을 아끼는 것이 오히려 투자수익률을 높이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고민이었다. 이런 문제의식은 그가 대학 졸업논문을 쓸 때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그는 1974년 웰링턴매니지먼트를 그만두고 뱅가드그룹을 설립했다. 이듬해 12월30일 그는 세계 처음으로 ‘인덱스 펀드’인 뱅가드500을 선보였다.

보글은 당시 펀드매니저 역할을 중시했던 흐름을 완전히 뒤집었다. 이 때문에 자산운용업계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았다. 뱅가드500을 포함해 초창기 선보인 보글의 펀드들은 ‘초원에서 동물들의 썩은 시체나 뜯어먹는 콘도르와 비슷하다’는 의미로 콘도르 펀드로 폄하되기도 했다.

하지만 뱅가드500은 1995년 이후 10년간 210.49%의 수익을 냈다. 이 기간 마젤란펀드의 수익률(163.23%)을 앞질렀다. 출시 첫해 1100만달러에 불과했던 뱅가드뮤추얼펀드 자산은 2007년 1230억달러로 늘어나 세계 최대 규모로 성장했다.

◆정반대 투자철학

린치는 최고의 투자수익률을 올려줄 주식을 발굴하는 것은 마치 바위 아래 숨어 있는 벌레를 찾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10개의 바위를 들춰내면 벌레 한 마리를 찾아낼 수 있듯이 20개 바위를 들추면 두 마리 벌레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펀드매니저의 노력으로 높은 수익을 내는 게 가능하다는 믿음이다.

린치는 은퇴 무렵 2000여개의 티커(미국 주식종목 코드)를 외우고 있을 정도로 주식을 늘 들여다봤다. 기업의 내재가치보다 저평가 가치주를 발굴하기 위해 수많은 기업들을 조사하고 방문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발굴한 주식이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을 때까지 보유했다.

그는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들의 관심이 미치지 않으면서 높은 성장성을 보이거나, 앞으로 고성장할 가능성이 큰 종목을 ‘완벽한 주식’ 혹은 ‘좋은 주식’이라고 말했다. 이런 종목을 찾아내 투자하는 것이 펀드매니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반면 보글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장 평균 이상 수익을 올리는 투자자가 나올 확률은 30분의 1보다 낮기 때문에 가장 효과적인 투자전략은 시장 평균 수익률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만든 인덱스 펀드는 인덱스(지수) 구성 종목에 골고루 투자해 수익률이 시장 평균치(지수)를 좇도록 설계한 수동적 성향의 금융투자 상품이다. 보글은 최고의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쌓인 수익을 투자 원금에 합쳐 재투자하는 ‘복리 투자’의 이점을 이용하는 것뿐이라고 역설했다.

뱅가드그룹은 자산운용 보수로 지난 10년간 투자금액의 0.2~0.4%(연간) 정도를 받았다. 이 기간 업계 전체의 평균 자산운용 보수(1.0~1.2%)보다 훨씬 낮다. 펀드매니저들에게 업무용 차량이나 골프 회원권을 주지 않았고 출장 때는 일반석을 타게 했다.

◆20세기 위대한 투자자들

미국 경제주간지 포천은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은 2000년 1월호에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투자자들’이라는 기사를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와 함께 피터 린치, 존 보글을 위대한 투자자로 선정했다.

백재열 한국투신운용 부장은 피터 린치와 존 보글 가운데 누가 더 뛰어난 펀드매니저였는지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주식시장은 기업의 내재가치가 주가에 온전히 반영될 만큼 효율적이고 모든 정보가 공개된 시장은 아니지만, 펀드매니저들의 눈에 쉽게 띌 정도로 저평가 주식이 널려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큰 흐름에서 보면 좋은 주식을 능동적으로 찾아나서는 ‘액티브 펀드’에 쏠렸던 투자자들이 시장의 평균 수익률을 따라잡겠다는 ‘인덱스 펀드’로 옮아가는 추세를 보였다. 린치와 같은 ‘투자의 대가’가 되겠다는 수많은 펀드매니저들이 기업 자료를 들여다보고 현장을 방문해 ‘훌륭한 주식’을 발굴하려는 노력을 쏟아부을수록 주식시장에서 저평가 종목을 발굴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이런 펀드매니저들이 많기 때문에 ‘시장의 평균 수익률을 지속적으로 앞지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보글의 투자철학이 더욱 빛을 발한 것이다.

반대로 높은 수익을 내는 것이 너무 어려워져 수많은 펀드매니저들이 인덱스 펀드로 돌아선다면 역설적으로 린치와 같은 훌륭한 펀드매니저들이 좋은 주식을 발굴할 기회가 많아진다. 이런 면에서 보면 린치와 보글의 투자철학은 서로 보완하는 관계라고 봐야 한다.

◆강연과 저술활동 주력

린치는 은퇴 이후 투자와 관련된 저술을 하거나 강연활동을 해왔다. 자신의 투자철학을 알기 쉽게 개인 투자자들에게 설명하는 데 힘썼다. 그가 쓴 ‘One up on Wall Street’는 전 세계 주식투자자들의 필독서가 됐다.

뱅가드그룹 회장 시절 개인 투자자들을 위해 최저 수준의 수수료를 책정한 보글도 2000년 명예회장 자리에서 물러난 뒤 그룹 내 보글마켓리서치센터 사장을 맡으면서 강연과 저술활동을 벌이고 있다. 펀드를 운용할 때 투자자의 이익을 최우선시해야 한다. 인간의 가치·성실·정직 등 미덕을 지키는 데 한치도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보글의 메시지는 펀드산업 종사자들에게 지금도 깊은 울림으로 남아 있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