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골프대장' 오바마
케네디 대통령은 멋진 스윙 폼을 지닌 데다 핸디캡도 낮은 ‘고수’였지만 은밀히 골프를 즐기는 쪽을 택했다. 라운드하는 사진을 찍는 건 절대 금지였다. 전임 아이젠하워가 툭하면 골프로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골프 매너는 별로 좋지 않아 상대의 실수를 유도하려고 신경을 자극하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속된말로 ‘구찌’가 심했던 것이다.
빌 클린턴도 8년 재임 기간 동안 400여 차례 라운드를 했다. 멀리건을 자주 받아 ‘빌리건’이란 별명을 얻었지만 골프에 대한 집착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브루나이에서 정상들과 만찬을 한 뒤 조명시설이 갖춰진 골프장을 찾아 심야 우중(雨中) 골프를 즐겼을 정도다. 1996년 재선을 앞두고 실시한 ‘대통령의 휴가’ 여론조사에서 ‘골프는 절대 하지 말라’는 결과가 나왔을 때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재임 중 100회 라운드를 넘긴 오바마 대통령이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로부터 ‘골프대장(Golfer-in-Chief)’이란 공격을 받고 있다. 할 일이 태산인데 한 번에 4시간여나 걸리는 골프에 빠진 건 빈약한 직업의식과 윤리의식을 드러낸 것이란 비난이다. 아이젠하워나 클린턴에 비하면 라운드 횟수가 훨씬 적은 데도 집중공격을 받는 건 국내외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골프장을 찾은 게 화근이라고 언론들은 분석한다. 빈 라덴 사살 작전이 전개되던 도중이나, 태풍 피해가 심한 상황에서 골프장을 찾는 등 ‘눈치 없는 라운드’가 부각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909년 윌리엄 태프트 이후 미 대통령 18명 중 15명이 골프를 즐겼다. 좋지 않은 인상을 준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이들이 골프를 그만두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 아이젠하워 대통령 주치의의 생각은 이랬다. “골프라도 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스트레스로 우리에 갇힌 사자처럼 될 것이다. 그러면 나는 미치광이를 돌봐야 할지도 모른다.” 아이젠하워나 클린턴이 재선에 성공한 것을 보면 유권자들은 대통령의 골프를 슬쩍 눈 감아준 것도 같다. 재선을 노리는 오바마에게 골프가 어떻게 작용할지 궁금하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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