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불볕더위다.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이상 고온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가뭄이 심해서 농작물 타격도 크다. 하지를 지난 지 며칠 됐는데 모내기를 못한 곳도 많은 모양이다. 논에 물도 대지 못하는 상황, 밭에서 고스란히 타들어가는 작물들을 바라보는 농민들 심사가 오죽할까. 기우제를 지내야 했던 옛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이 헤아려진다.

중국 서진의 진수(233~297)가 쓴 ‘삼국지 위지동이전’을 보면 동방의 활 잘 쏘는 동이(東夷)족 즉 오늘날 한민족의 조상으로 분류되는 부여, 고구려, 옥저, 예(濊), 한(韓) 등에 대한 귀중한 기록들이 나온다. 이 기록들을 수록하는 원칙 중 하나는 중국인인 진수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특이한 이민족(異民族)의 풍습이다. 예컨대 이들 민족이 오월 수릿날이나 시월 상달에 한 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고 감사하는 제천의례를 지낸다는 게 그 하나인데, 중국의 천자에게만 허락된 제천의례를 동방의 이민족들이 생활화하고 있다는 게 특이하게 보였다는 식이다. 가뭄이나 장마가 들어 농작물이 피해를 입으면 왕을 죽이거나 바꾸자는 논의를 한다는 것도 그 사례 중 하나다.

고래로 제왕의 덕목 중 하나가 치산치수(治山治水) 아니던가. 특히 농경민족들에게 가뭄과 홍수에 대한 대비는 집단 생존과 직결되는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비가 내리지 않는 게 어찌 통치권자의 잘못일까만 집단심리는 그래도 희생양을 찾고 싶어 한다. ‘왕의 덕이 부족해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수군거림이 점점 확산되면서 민심이 되더니 불문율로 고착된다. 비과학적인 사고체계지만 어찌 보면 합리적인 면도 없지 않다. 권한을 주는 대신에 책임도 묻겠다는 식이다. 자연을 개발과 정복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사람과 자연이 일체화된 세계에 살던 사람들의 눈에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며칠 전 일이다. 학교 잔디밭에 스프링클러가 돌면서 물을 한껏 뿌리고 있었다. 어디선가 참새들이 날아와 물 젖은 잔디밭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노는 모습이 보여 한참을 서서 바라보았다. 참새들은 종종거리고, 폴짝거리고, 물마시고, 가볍게 날아오르면서 좋아라 하고 있었다. 눈길을 뗄 수 없었다. 가뭄 소식이야 지금 당장 ‘나의 문제’로 체감되지 않지만 내 눈앞의 참새들은 물의 고마움을 한껏 나타냄으로써 막연한 걱정이었던 가뭄 소식을 체감할 수 있는 걱정으로 바꾸어주었다.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관찰이라도 의미를 잘 부여하면 큰 발견이나 깨달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새삼스레 느꼈다. 우국충정, 선진일류사회 등과 같은 도덕과 정치담론의 브랜드는 그 관념 자체에 마약 같은 효과가 있어서 중독성과 전염성이 강하다. 하지만 개인에게 실제로 체화되는 효과는 미미하다. 실제는 훨씬 더 적나라하고 구체적이고 진실하다. 이런 작은 진실들이 모여서 큰 진실로 이어져야 바람직한 사회가 아닐까.

김희옥 < 동국대 총장 khobud@dongguk.ed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