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 의류는 ‘정찰제가 기본’인 백화점에서 ‘고무줄 가격’이 여전히 통용되는 대표적인 상품군이다. 제품에는 정가가 표시된 가격표가 붙어 있지만 실제로 판매되는 가격은 매장 점원과 소비자 간 ‘흥정’으로 결정됐다. 모피업체들이 높은 가격으로 정가를 책정해놓고 상시적으로 30~50% 할인된 가격을 소비자에게 제안하는 식이다. ‘대폭 할인’을 미끼로 고가 제품 구입시 소비자들이 느끼는 심리적인 부담감을 누그러뜨려 구매로 유도하는 전략이다.

점원들은 여기에 재량권을 가지고 단골이나 더 깎으려는 고객에게는 추가로 할인해주곤 했다. 같은 상품이라도 소비자들의 흥정 능력에 따라 판매 가격이 달라지기 때문에 값을 깎는 데 소질이 없는 소비자들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모피는 수시로 할인율이 바뀌고 점원이 마음대로 상품 가격을 깎아주는 ‘임의 할인’이 광범위하게 이뤄져 표시가와 판매가 차이가 가장 크다”며 “들쭉날쭉한 가격으로 소비자들의 불만과 항의가 많은 품목”이라고 전했다.

롯데 현대 신세계 갤러리아 AK플라자등 주요 백화점들이 모피업계의 이런 오래된 관행을 바꾸기로 했다. 오는 29일부터 백화점들은 입점한 모든 모피 브랜드를 대상으로 가격 정찰제를 실시한다.

이는 2008년 남성정장을 시작으로 구두 여성복 등으로 확대된 ‘그린 프라이스 제도’(정가를 적정 가격으로 내리고 임의 할인하지 않는 가격정찰제)와 같은 맥락이다. 상시할인 관행에 따른 ‘가격 거품’을 제거하고 백화점 가격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을 없애기 위한 방안이다.

이번 ‘모피 가격 정찰제’는 신세계가 주도했다. 올초부터 모피업체들과 간담회 등을 통해 정찰제 도입을 논의해왔다. 소정섭 신세계 모피 바이어는 “올초 삼성전자 LG전자 매장이 가전 정찰제를 도입하면서 모피는 백화점에서 상시·임의 할인 관행이 남아 있는 거의 유일한 품목”이라며 “모피업체들도 정찰제 필요성을 느껴왔기 때문에 함께 시행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신세계백화점은 진도 근화 동우 디에스 윤진 엘페 사바띠에 온화 등 입점 브랜드가 모두 정찰제에 참여해 29일부터 기존 정가에서 30~50% 내린 가격으로 가격표를 바꿔 판매에 나선다.

최고급 모피소재인 ‘피메일 블랙그라마’(암컷 검은색 밍크) 하프코트(85㎝)는 기존 1900만~2000만원대에서 950만~1200만원대, 베스트(조끼)는 600만~700만원대에서 310만~372만원대로 표시가격을 낮출 예정이다.

한 모피업체 관계자는 “정찰제 가격은 기존의 평균 판매가격과 비슷한 수준에서 책정할 예정”이라며 “초기에는 기존 할인 관행에 익숙한 소비자들의 저항으로 매출 감소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각 백화점들은 일부 소비자들의 거부감을 줄이고 가격 정찰제를 정착시키기 위해 시행 초기 구매금액별 상품권이나 고급 사은품 증정, 이월상품 할인 판매 등 다양한 판촉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