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 계열 물류업체인 한진의 작년 말 기준 순자산가치는 7600억원에 달한다. 보유 중인 대한항공 지분(9.9%)만 팔아도 3371억원(15일 종가 기준)을 거머쥘 수 있다. 이렇게 가진 ‘재산’이 많은데도 이 회사의 시가총액은 2078억원에 불과하다.

유로존 재정위기 등 증시를 둘러싼 불안 요소들이 가라앉지 않자 보유 자산가치에 비해 과도하게 저평가된 종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자산주는 대개 증시가 하락해도 상대적으로 덜 떨어질 뿐 아니라 향후 보유자산 가치가 부각되면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백 번 생각해도 너무 싸다”

15일 유가증권시장에서 한진은 200원(1.14%) 내린 1만7350원에 마감했다. 작년 8월18일 종가가 3만6000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10개월 만에 반토막이 된 셈이다. 물류업계의 경쟁이 심화된 탓이라지만 한진이 보유한 주식(대한항공 3371억원, 서울고속버스터미날 약 1000억원)과 부동산(장부가 기준 5832억원)을 감안할 때 너무 떨어졌다는 게 증권업계 평가다.

복진만 SK증권 애널리스트는 “당장 매각할 수 있는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지분과 부산 재송동 부지 가치만 해도 시가총액보다 많은 2500억원에 달한다”며 “주가순자산가치(PBR)가 0.27배에 불과한 현 주가는 ‘백 번 생각해도 너무 싸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플랜트 기자재 업체인 영풍정밀 역시 보유하고 있는 고려아연(1.29%·1152억원)과 (주)영풍(4.39%·781억원)의 시장가치만 합쳐도 시가총액(1575억원)을 훌쩍 넘는다.

삼성공조는 보유 현금이 시가총액보다 많다. 올해 1분기 말 기준으로 이 회사가 갖고 있는 현금성자산(124억원)과 은행예금 등으로 구성된 유동금융자산(1302억원)은 1426억원이다. 총부채(479억원)를 다 갚고도 시가총액(639억원)보다 많은 돈이 남는다.

서부T&D와 성창기업지주는 ‘땅부자’다. 서부T&D가 보유한 서울 신정동 화물터미널 부지와 용산 관광버스터미널 부지, 8~9월께 문을 여는 인천 연수구 쇼핑몰 시세를 합치면 1조5000억원에 이른다. 시가총액(6507억원)의 2배가 넘는다.

성창기업지주는 하반기 중 시가총액(1215억원)보다 많은 1500억원 안팎의 부산 명지지구 토지 매각매금을 LH(한국토지주택공사)로부터 받을 전망이다. 남화토건 역시 38.9% 지분을 보유한 남화산업이 110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보유한 덕분에 ‘알짜 자산주’로 꼽힌다.

◆성장성 겸비할 때 주가 상승

증시 전문가들은 유로존 위기가 진정되고 국내 주식형 펀드에 자금이 유입되기 시작하면 이들 ‘저평가 자산주’에 매수세가 붙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005년 국내 주식형 펀드에 자금이 유입되면서 기관들이 저평가된 자산주를 대거 사들였던 사례가 유로존 위기가 안정세를 찾아가는 것을 계기로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싸다’는 이유만으로 투자했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김학균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자산이 많은데도 저평가됐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며 “보유 부동산의 개발 여부가 불투명하거나 본업의 성장성이 떨어진다면 자산이 많아도 제대로 평가받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최근 주가가 오른 저평가 자산주들은 대개 보유 부동산에 대한 개발이 가시화되거나 기존 사업의 성장성이 부각된 곳들이다. 서부T&D는 인천 연수구 쇼핑몰 오픈과 용산 호텔 개발 기대감이 맞물리면서 지난달 18일 이후 17.4%나 올랐다. 남화토건도 평택 미군기지 이전사업 공사가 본격화된다는 호재가 더해지면서 이달 들어 9.6% 상승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