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가로수길을 점령했다."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은 대형 패션업체가 들어서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다. 현재 이곳엔 대형 제조·유통 일괄형(SPA) 브랜드인 자라(ZARA), 에잇세컨즈(제일모직), TNGT(LG패션), 포에버21 등이 자리 잡고 있다.

과거 화랑과 디자이너숍으로 대표됐던 가로수길이 이제 대형 SPA브랜드의 천국이 된 것.

이에 디자이너 30명이 만든 SPA 브랜드 '스마일마켓' 매장이 현재 가로수길에서 성업 중이다. 여기에 젊은층에게 인기가 많은 토종 SPA '스파이시칼라'까지 가로수에 입성했다.

제일모직 관계자는 "가로수길은 젊은 문화적 이미지가 강한 거리로 20~30대를 주 타깃으로 하고 있는 SPA브랜드 이미지를 위해 적합한 장소"라며 에잇세컨즈 1호점 장소로 가로수길을 선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가로수길 새단장…'월세 7500만원 옷가게 어딘가 했더니…'
실제 에잇세컨즈는 가로수길 1호점 오픈이후 3개월도 되지 않아 5개매장에서 100억원 매출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이같이 대기업 SPA브랜드들이 가로수길을 장악하고 승승장구하는 반면 기존에 있던 소상인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근 공인중개사에 따르면 지난해 월세 4500만~5000만원이었던 상가는 올해 1억원을 호가하며 2배가량 뛰었다. 7~8년 전에 비하면 8배가량 널뛰기를 한 상황이라고.

공인중개사 J씨는 "최근 대형 패션 브랜드들이 입점하면서 소상인들보다 임대료를 2배가량 더 지불하다보니 빌딩 주인들도 대기업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에잇세컨즈 월세는 약 7,500만원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이처럼 높은 세부담에도 불구하고 대형매장들이 가로수길을 고집하는 이유는 유동인구가 워낙 많기도 하거니와 가로수길이 패션피플에게 차지하는 위상때문에 플래그쉽 스토어로 내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로수길에서 샵을 운영하던 디자이너 P씨는 최근 높은 월세부담을 감당하지 못하고 깊숙한 이면도로로 매장을 이전했다.

상권이 커지자 건물주들이 거액의 권리금과 임대료를 챙기려 기존 세입자를 내쫓다시피 하는 일이 잦아졌다.

가로수길에 3년전 카페를 오픈한 30대 W(37)씨는 "처음 오픈할때는 가로수길에 갤러리와 유명 카페들이 많아 30대 고객이 많았다. 최근 대형브랜드 들이 들어오면서 20대 젊은 유동인구가 늘어나 시험기간이나 축제기간 등의 영향을 많이 받아 전체 매출은 줄었다. 3년동안 대부분 카페가 임대료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가로수길을 떠났다. 나도 재계약 시점이 다가오는데 건물주가 대폭 인상을 요구해서 세로수길로 이전을 검토중이다"라고 말했다.

가로수길에 부는 젊은 바람은 길 양옆으로 뻗어있는 8여개의 세로수길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세로수길에는 레스토랑, 아기자기한 카페 등이 들어서고 있다.

가로수길이 유명세를 타게 한 주역들이 사라지며 개성을 잃고 '몸값'만 비싸진 가로수길이 앞으로 또 어떤 변화를 겪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경닷컴 이미나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