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이사의 절반 이상을 사외이사로 선임해야 하는 상장회사의 범위를 현재 자산총액 2조원 이상에서 1조원 이상으로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법무부는 12일 ‘사외이사 제도개선 방안에 대한 세미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으로 상법을 개정할 뜻임을 밝혔다. 법무부 안대로 상법이 개정될 경우 이사 총수의 과반을 사외이사로 채워야 기업의 수는 지금의 136개에서 217개로 늘어난다. 사외이사 수를 늘리면 기업에 대한 경영감독과 견제가 더 잘될 것이라는 게 법무부가 내세우는 이유다.

하지만 법무부의 이런 움직임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상법 개정안을 경제부처도 아닌 법무부가 왜 번번이 들고 나오느냐는 점이다. 준법지원인 도입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준법지원인이 변호사들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무리하게 도입됐다는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우리는 법무부가 사외이사 수를 늘리려는 것도 비슷한 의도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사외이사 직업 분포에서 교수 공무원에 이어 법조인이 세 번째로 많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숫자 늘리는 데 강조점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 소위 개선 방안이다. 사외이사 제도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한 이유는 그 숫자가 적어서가 아니라 당초 취지대로 활용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외이사 도입의 주요 근거였던 소위 기업지배구조 논쟁은 작금의 금융위기와 함께 이미 끝난 논쟁이라고 봐야 한다. 오히려 주인 없는 자본주의가 더 심각한 문제다. 오죽 하면 와튼스쿨의 프랭클린 앨런 교수가 “삼성의 지배구조는 더 이상 비판하기 어렵다”고 얘기했겠는가. 그는 기업지배구조 개선 활동으로 유명한 장하성 교수의 지도교수였다.

결국 이번 상법 개정은 준법지원인으로 재미를 본 법무부가 동료들을 위한 또 하나의 문전옥답을 만들기 위해 시도하는 것이라고밖에는 달리 볼 수 없다. 특정 집단이 지위를 이용해 법을 바꾸고 이를 통해 집단의 내부이익을 확대하려 한다는 의심을 받아서야 되겠는가. 관료를 감독하는 감사원이나 청와대는 대체 뭘하고 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