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들이여, 조국의 운명을 결정할 때가 왔다.” 러시아 근대화를 이끈 개혁군주 표트르 1세는 1709년 북유럽의 패권을 쥐게 된 폴타바 전투에서 승리한 뒤 이렇게 외쳤다. 북유럽 강자였던 스웨덴의 그늘에서 벗어난 동시에, 10년째 이어진 북방전쟁의 승기를 잡았다.

끊임없는 유럽 진출 정책을 통해 모스크바 공국을 러시아 제국으로 키운 그는 340년 전(1672년) 오늘 아버지 알렉세이 황제의 열네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열 살이던 1682년 이복형 이반 5세와 함께 왕위에 오른 표트르는 비정상적인 행동을 이어갔다. 교회에서 술을 마시고 성직자를 폭행했다. 이는 그러나 섭정을 하던 이복누나 소피아와 정적들의 감시를 피하기 위한 계산된 행동이었다.

표트르는 열두 살 때 네덜란드로 건너가 조선기술을 배우고, 영국에선 해군 군사학을 익혔다. 1698년 소피아의 반란을 진압한 그는 1703년 발트 해안가에 ‘유럽의 창’ 역할을 하게 될 새 도시를 만들었다. 블라디미르 레닌의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러시아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관료제를 도입하고 인구조사를 실시하는 등 개혁 정책을 밀고 나갔다. 부국강병(富國强兵)만을 지상과제로 여겼던 그의 통치 과정엔 적잖은 희생도 따랐다. 표트르는 반란에 연루된 아들 알렉세이를 먼저 보낸 뒤 술로 세월을 지새우다 1725년 1월28일 조용히 세상을 떴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