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삶의 부산물…창문 같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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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화가 김원숙 씨 개인전…12일부터 갤러리 현대서
노천 온천에 몸을 담그고 보름달을 바라보는 여인, 나무가 되고 싶은 사람, 별이 빛나는 밤 호수에 몸을 풍덩 던지는 남녀, 불 켜진 오두막집 위로 밤하늘을 나는 남녀, 숲 속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
재미화가 김원숙 씨(55)의 그림은 무지갯빛 추억과 동화 같은 감흥을 준다. 오는 12일부터 내달 8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 본관과 두가헌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펼치는 김씨는 자연과 일상의 모습을 시적으로 묘사한 작품 100여점을 내보인다. ‘사랑과 희망’을 주제로 일기나 독백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단순하게 그린 작품들이다.
30여년째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씨는 고정 팬이 많은 작가다. ‘세계 여성의 해’였던 1978년 미국 최고 여성작가 중 한 명으로 선정된 뒤 화단의 주목을 받았고, 1995년 한국작가로는 처음으로 세계유엔후원자연맹(WFUNA)이 선정하는 ‘올해의 유엔 후원 예술인’에 뽑히기도 했다.
김씨는 “예술은 우리가 쌓아올린 편견들을 누그러뜨리고 영혼을 치유하는 씨앗이자 감사와 즐거움의 열매를 맺는 멋진 놀이”라며 “누구든 삶이 답답하면 스케치북 한 권을 사서 좋아하는 그림을 베껴보는 것도 삶의 여유를 찾는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일리노이주립대 대학원에서 판화 제작 강의를 듣는 날이었는데 음악회에 다녀오는 바람에 지각을 했어요. 교수님께 늦어서 죄송하다는 의미로 음악회에서 그린 드로잉을 보여 드렸지요. 교수님은 낙서처럼 그린 그림을 보고 ‘이런 그림, 너의 이야기가 가장 너다운 작업이다’고 하더군요. 그때부터 제 이야기를 화폭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그림은 라디오 음악’이라고 말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림을 보고 괴로워한다면 예술이 아니죠. 그림을 본다는 것은 음악을 들으려고 라디오를 켜는 마음과 같아요. 뭔가 빈 것 같고 허전해서 켜는 거지 무슨 음악을 연구하고 의미를 파헤치려고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림은 삶의 부산물인 동시에 영혼의 창문 같은 것이라고 강조하는 그는 “그린다는 것은 이 찬란하고도 아름다우며 말썽 많고 고통투성이인 삶 속에서 떠오르는 생의 찬가요 불평이며 마음 깊이 남는 애잔한 것들의 기록”이라고 설명했다.
“저는 미술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가족과의 생활이 더 중요하거든요. 아이가 자전거를 사달라고 하는데 하늘을 노랗게 그려서 자전거가 생길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그렸을 겁니다.” 인물들은 이목구비 없이 얼굴 바탕에 점 하나로 처리했다. 특정한 인간의 이야기가 아니라 보편적인 사랑과 희망을 표현하려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유독 뒤돌아보는 사람의 모습이 많이 등장한 것도 흥미롭다.
“언젠가 중세 페르시아 시인 루미의 시를 읽었는데 거기에 뒤돌아보는 것은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는 것이라고 표현했더군요. 마치 700년 전 시인이 연애편지를 쓴 것처럼 글 속의 주인공이 꼭 저 같았습니다. 그 느낌을 표현한 거죠.” 1976년 첫 개인전 이래 63번째인 이번 전시회는 브론즈로 만든 드로잉 조각 ‘그림자 드로잉’ ‘집’ 등 4개 테마로 꾸며진다. (02)2287-3591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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