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슬린 김 "수백번 오디션 도전…결국 뉴욕 메트가 제 무대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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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데뷔 후 처음 서울 찾은 소프라노 캐슬린 김
“2007년 12월 메트로폴리탄에서 오페라 ‘가면무도회’를 할 때 오스카 역으로 딱 두 번 무대에 설 기회가 있었어요. 당시 시카고 리릭 오페라단의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을 갓 마치고 온 저로서는 가장 큰 역할을 맡은 거죠. 제1 캐스팅에 밀려 제대로 리허설도 못해보고 관객 앞에 서야 했어요. 대가들하고 같이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꿈 같았는데 큰 박수를 받았던 그때를 지금도 잊지 못해요.”
세계 3대 오페라극장으로 꼽히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이하 메트 오페라)에 2007년 혜성처럼 등장했던 소프라노 캐슬린 김(38). 일본 후쿠오카심포니와 협연을 마치고 이틀간 서울에 들른 그를 5일 서울 소공동에서 만났다.
메트 오페라는 한 번 입성하기도 어렵지만 성악가 모두가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다음 시즌까지 주역으로 보장받기도 쉽지 않다. 김씨는 2007년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바바리나 역으로 데뷔한 뒤 한 시즌도 놓치지 않고 메트 오페라의 러브콜을 받았다.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에서 깜찍하고 생기 넘치는 목소리의 올림피아 역, ‘가면무도회’에서 재기발랄한 오스카 역, 현대오페라 ‘닉슨 인 차이나’에서 신경질적이고 앙칼진 목소리의 마오쩌둥 부인 장칭 역으로 변신해온 그는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결혼 10년 넘게 최고의 후원자이자 동반자로 살아온 남편도 아직 무대 위의 아내를 보면 누군지 모르겠다고 해요. 평소에 말 없고 조용한 성격이 무대에서는 폭발하나봐요.”
그는 소프라노 중에서도 화려한 기교가 돋보이는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다. 고음역을 정확한 기교로 뽐낸다.
“저의 메트 첫 시즌에서 오스카 역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분장실에서 옷을 벗는데 옷 안쪽에 뭔가 붙어 있더라고요. 거기엔 그 옷을 입었던 소프라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어요. 소프라노 조수미, 신영옥 선생님 이름도 있었고, 학생 때부터 선망해오던 많은 성악가의 이름이 있었죠. 이제 거기에 제 이름도 들어가 있어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고 2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그는 맨해튼음대와 대학원을 마쳤다. 수없이 많은 오디션을 본 뒤 2005년 미국 3대 오페라단인 시카고 리릭 오페라단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에 합격했다. 세 번째 도전 끝에 건진 쾌거였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성악가들을 제치고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원래 멤버를 빼내고 들어가는 이변을 일으켰다.
모든 기회가 우연히 다가온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기회를 성공의 씨앗으로 만든 건 피나는 노력이었다. 작은 키에 동글동글한 이목구비의 전형적인 동양인 외모로 서양 문화의 꽃인 오페라 무대를 장악하기란 쉽지 않았다. 동료들은 정해진 시간에만 연습했지만 김씨는 남은 시간과 주말까지 연습했다. 동료들이 공용연습실을 ‘캐슬린의 방’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 시간이 쌓여서 기회를 잡을 수 있었나봐요.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 동료 10명과 요한 스트라우스의 ‘박쥐’ 공연을 올렸죠. 그때 우연히 뉴욕 메트 오페라 관계자가 와서 보고 무대 오디션 기회를 줬어요. 제임스 레바인과 캐스팅 감독, 음악 감독 앞에서 오디션을 봤죠. 첫 데뷔가 ‘피가로의 결혼’에서 바바리나 역이었는데 마침 카운테스 역을 홍혜경 선생님이 맡으셔서 데뷔 무대를 그분과 함께하는 영광을 누렸죠. 동료들 중 가장 먼저 메트에 입성하게 됐어요.”
그는 지금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속해 있는 매니지먼트사 IMG와 영국 최대 매니지먼트사인 해리슨 패럿에 소속돼 있다. 지난 1월 시카고의 집을 떠나 미국과 유럽에서 공연해온 그는 올해 한 번도 집에 가지 못했다고 했다. 메트 오페라 무대에서 자만에 빠질 때면 일부러 소도시의 작은 극장을 찾기도 한다. 2015년 스케줄까지 꽉 차 있는 그는 내년 4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갖는다. 올 연말에는 메트 오페라에서 오스카 역으로 다시 한번 무대에 선다.
“아무리 작은 무대여도 제 무대를 좋아해주는 관객들을 만나면서 ‘교만해지지 말자’고 다짐해요. 관객에게 미안하지 않은 공연을 하게 해달라고 매번 기도하죠.”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세계 3대 오페라극장으로 꼽히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이하 메트 오페라)에 2007년 혜성처럼 등장했던 소프라노 캐슬린 김(38). 일본 후쿠오카심포니와 협연을 마치고 이틀간 서울에 들른 그를 5일 서울 소공동에서 만났다.
메트 오페라는 한 번 입성하기도 어렵지만 성악가 모두가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다음 시즌까지 주역으로 보장받기도 쉽지 않다. 김씨는 2007년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바바리나 역으로 데뷔한 뒤 한 시즌도 놓치지 않고 메트 오페라의 러브콜을 받았다.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에서 깜찍하고 생기 넘치는 목소리의 올림피아 역, ‘가면무도회’에서 재기발랄한 오스카 역, 현대오페라 ‘닉슨 인 차이나’에서 신경질적이고 앙칼진 목소리의 마오쩌둥 부인 장칭 역으로 변신해온 그는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결혼 10년 넘게 최고의 후원자이자 동반자로 살아온 남편도 아직 무대 위의 아내를 보면 누군지 모르겠다고 해요. 평소에 말 없고 조용한 성격이 무대에서는 폭발하나봐요.”
그는 소프라노 중에서도 화려한 기교가 돋보이는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다. 고음역을 정확한 기교로 뽐낸다.
“저의 메트 첫 시즌에서 오스카 역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분장실에서 옷을 벗는데 옷 안쪽에 뭔가 붙어 있더라고요. 거기엔 그 옷을 입었던 소프라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어요. 소프라노 조수미, 신영옥 선생님 이름도 있었고, 학생 때부터 선망해오던 많은 성악가의 이름이 있었죠. 이제 거기에 제 이름도 들어가 있어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고 2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그는 맨해튼음대와 대학원을 마쳤다. 수없이 많은 오디션을 본 뒤 2005년 미국 3대 오페라단인 시카고 리릭 오페라단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에 합격했다. 세 번째 도전 끝에 건진 쾌거였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성악가들을 제치고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원래 멤버를 빼내고 들어가는 이변을 일으켰다.
모든 기회가 우연히 다가온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기회를 성공의 씨앗으로 만든 건 피나는 노력이었다. 작은 키에 동글동글한 이목구비의 전형적인 동양인 외모로 서양 문화의 꽃인 오페라 무대를 장악하기란 쉽지 않았다. 동료들은 정해진 시간에만 연습했지만 김씨는 남은 시간과 주말까지 연습했다. 동료들이 공용연습실을 ‘캐슬린의 방’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 시간이 쌓여서 기회를 잡을 수 있었나봐요.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 동료 10명과 요한 스트라우스의 ‘박쥐’ 공연을 올렸죠. 그때 우연히 뉴욕 메트 오페라 관계자가 와서 보고 무대 오디션 기회를 줬어요. 제임스 레바인과 캐스팅 감독, 음악 감독 앞에서 오디션을 봤죠. 첫 데뷔가 ‘피가로의 결혼’에서 바바리나 역이었는데 마침 카운테스 역을 홍혜경 선생님이 맡으셔서 데뷔 무대를 그분과 함께하는 영광을 누렸죠. 동료들 중 가장 먼저 메트에 입성하게 됐어요.”
그는 지금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속해 있는 매니지먼트사 IMG와 영국 최대 매니지먼트사인 해리슨 패럿에 소속돼 있다. 지난 1월 시카고의 집을 떠나 미국과 유럽에서 공연해온 그는 올해 한 번도 집에 가지 못했다고 했다. 메트 오페라 무대에서 자만에 빠질 때면 일부러 소도시의 작은 극장을 찾기도 한다. 2015년 스케줄까지 꽉 차 있는 그는 내년 4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갖는다. 올 연말에는 메트 오페라에서 오스카 역으로 다시 한번 무대에 선다.
“아무리 작은 무대여도 제 무대를 좋아해주는 관객들을 만나면서 ‘교만해지지 말자’고 다짐해요. 관객에게 미안하지 않은 공연을 하게 해달라고 매번 기도하죠.”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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